모아이의 일기_1화_대림창고
카페에서 삶을 체험하는 도시인들
대학 때문에 마산에서 서울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울 사람들끼리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성북구다’ ‘당산이다’ ‘잠실이다’ 이렇게 대답하는 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 같은 서울이지 뭘 그리 나누는 거람? 하지만 세월이 흘러 서울에서 몇 년 살다 보니 이제는 나도 어디 사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서울’이라 답하지 않고 내가 사는 동네 ‘삼전동’이라 답한다. ‘서울’이라고 대답했다면 상대방이 ‘저 녀석 아주 꼬인 놈이군’이라 여길 태니.
서울은 큰 도시다. 한 동네 규모가 웬만한 지방도시와 비등하다. 그 시절 나는 그 크기를 가늠하지 못했다. 그 크기를 가늠하는 데 어려움을 겪은 데는 지하철의 몫이 크다. 지하철로 문만 닫혔다 열렸을 뿐인데 돈암에서 이수까지 도착해 있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문만 닫혔다 열렸는데 17층에 도착해 있는 것처럼. 지하철을 타면 얼마나 이동했는지, 머리 위로 뭐가 지나갔는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지하철을 처음 탄 외계인들은 깜짝 놀랄지도. 외계인 왈 ‘지구인은 도시에서 공간이동 기술을 사용하는 구만!’.
상경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성수역을 거닐었다. 물론 그때는 여기가 성수인지 상수인지도 몰랐다. 정처 없이 여행하는 외계인처럼 Seuongsu? Sangsu? 하며 헷갈려하다 ‘뭐든 어때’라며 넘어갔다. 그때 성수는 추웠고 지금과 달리 행인도 몇 없는 동네였다. 그러다 문득 큰 카페를 보았다. 안을 보면 카페 같은데 카페 같은 간판도 달고 있지 않고 외관도 카페 같지 않아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곳이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대림창고’였다.
지금 그 대림창고에 앉아 있다. 예전엔 이 곳이 말 그대로 창고였다고 한다. 쓸모를 다해 없어질 위기에 처했지만, 다목적 문화 문화 공간 겸 카페로 재탄생하였다. 지금 앉은 테이블을 자세히 보면 커다란 철판과 기계 용품을 이용해 만든 작품이다. 이 친구들 소싯적 기름 맛 좀 본 녀석들이겠지만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벽면엔 페인트 대신 세월이 흔적인 녹이 채우고 있다. 제2의 인생을 사는 중년의 모습과 닮았다. 이는 구두 공장 지대에서 변화의 중심지로 바뀐 성수를 대표하는 건물이라 해도 무방하다.
대림창고 내부에 사람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음악과 함께 울리고 있다. 천장에 커다란 모빌이 걸려 있다. 마치 고래의 갈빗대 같은 구조물이다. 저건 뭘까, 뭘 의미하는 걸까. 마치 어린아이가 기린, 코끼리, 강아지 인형이 달린 모빌을 쳐다보듯, ‘저게 뭐야?’ ‘뭐야 뭐야?’하며 쳐다볼 뿐이다. 나름 보는 재미가 있다. 이처럼 카페는 단순히 이야기하는 공간에서 체험하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어느 때부터 곳곳에서 장소를 재해석한 카페가 등장하였고, 이는 공간도 낡았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재탄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대림창고의 성공적인 재탄생에 맞춰 별의별 카페도 생겨 나기 시작했다. 일부러 허름하게 만든 카페, 문이 자판기처럼 생긴 카페, 목욕탕처럼 생긴 카페. 사람들이 각박한 현실 속에서 교외로 가 새로운 체험을 하기보단, 이런저런 패션 카페를 전전하며 카페 투어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각박한 현실이 씁쓸하기도 하지만 요즘 다른 사람들 웃고 떠드는 모습을 카페 말고는 구경하기 힘들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