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안에서
나를 줄이는 일은
한 번의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건 기술에 가까웠다.
오래 쓰다 보니
몸에 배어버린 방식.
처음 줄인 건 말이었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
지금 말하면 분위기만 흐릴 것 같은 감정들.
나중에 말해도 될 것 같아서
미뤄두던 말들은
결국 말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됐다.
그다음은 기대였다.
원래 기대가 컸던 건 아니다.
다만 기대를 설명하는 일이
점점 번거롭게 느껴졌다.
실망하는 나 자신을
다시 수습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대를 낮췄고,
낮춘 기대에 맞춰
관계를 이해하려 했다.
감정도 줄였다.
화가 나도
왜 화가 났는지를 먼저 따졌다.
서운함이 올라오면
이 감정이 과한 건 아닌지 점검했다.
느끼는 것보다
조절하는 데 익숙해졌다.
그 과정에서
나의 기준은 점점 흐려졌다.
어디까지가 괜찮은지,
어디부터가 넘은 건지.
선을 그리는 대신
상대의 반응에 맞춰
선을 옮기는 쪽을 택했다.
갈등을 피하는 건
처음엔 성숙처럼 느껴졌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태도,
관계를 지키려는 노력.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선택이 아니라
자동 반응이 되었다.
불편함을 감지하면
몸이 먼저 움츠러들었다.
말하기 전에 계산했고,
말한 뒤를 더 걱정했다.
이 관계 안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안전한지,
그걸 계속 조정하고 있었다.
나를 줄이는 기술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큰 사건도 없었다.
대신
나 자신이 점점 희미해졌다.
무너짐은
항상 극적인 방식으로 오지 않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이
계속 이어질 뿐이다.
괜찮은 척하는 날들,
별일 없었다고 넘기는 시간들.
그때의 나는
아직 무너졌다고 말할 수 없었다.
다만
예전보다 나를 설명하기 어려워졌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관계 안에 있으면서도
점점 혼자가 되어갔다.
다음 이야기는
이렇게 줄어든 내가
어느 순간부터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던 때에 관한 기록이다.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라는 쪽으로
생각이 이동하던 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