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편. 다시 흔들렸지만 돌아가지 않은 날

by 모온


기준이 생겼다고 해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흔들림은 여전히 왔고,
때로는 더 자주 찾아왔다.


어떤 날에는
이 기준이
괜히 나를 어렵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처럼 살면
덜 고민해도 될 텐데,
덜 예민해도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그날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시작했다.
해야 할 일들을 했고,
일상은 평소처럼 흘러갔다.
겉으로 보면
이전과 다를 게 없는 하루였다.


하지만
마음은 계속
뒤쪽으로 끌렸다.
예전의 기준이
익숙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너무 까다롭게 살고 있는 거 아니야?”
“이 정도는 그냥 넘길 수도 있잖아.”
“다들 이렇게 사는데, 굳이?”


그 말들은
나를 공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배려하는 척했다.
조금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길을
가리켜주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잠깐
그 방향을 바라봤다.
솔직히 말하면
돌아가고 싶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쪽,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쪽,
그냥 견디면 되는 쪽으로.


그 기준은
너무 오래 써 와서
몸에 잘 맞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방향으로
발을 내딛지 않았다.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니었고,
마음이 단단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이미 한 번
덜 닳는 하루를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 기준으로 하루를 살아본 사람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때
어디가 더 닳는지를
알아버린다.


그래서 나는
그날도
완벽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
불편함은 남겨두었고,
관계는 매끄럽지 않았고,
하루는 여전히 피곤했다.


다만
이전처럼
스스로를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참아야지”라는 말로
하루를 정리하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오늘도 잘 버텼다.”


대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침묵이
생각보다
나를 덜 지치게 했다.


기준은
이렇게 작동한다.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잘못된 방향으로
완전히 돌아가지 않게 붙잡아준다.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헷갈리고,
가끔은
예전 방식이 더 나아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방향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지.


그래서 나는
아주 조금씩
다른 쪽으로 걷는다.
느리고,
자주 멈추고,
때로는 제자리처럼 느껴질지라도.


완전히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기준으로.


이 기준은
나를 구해주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나를
다시 버리게 두지는 않는다.


그날은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은 하루였다.
그런데도
나는 그 하루를
끝까지 통과했다.


다시 흔들렸지만,
돌아가지는 않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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