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 설명하지 않기로 한 날

by 모온

어느 순간부터
나는
설명하는 일이
조금 피곤해졌다.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
왜 그렇게 느끼는지,
왜 그 선택을 했는지.


예전에는
그걸 잘 설명하려고 했다.


이해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조금 더 길게 말했고,
조금 더 부드럽게 말했고,
가능하면
상대가 편한 방향으로
정리해서 말했다.


그게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알게 됐다.


설명을 많이 할수록
내가 더 많이
지워지고 있다는 걸.


내가 왜 힘든지 설명하다 보면
결국
상대가 납득할 수 있는 정도로만
말하게 됐다.


내가 느낀 그대로가 아니라
이해되기 쉬운 형태로
조정된 말.


그래서
말을 다 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내 마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전달된 것 같았지만
실은
전달되지 않은 느낌.


그날도
비슷한 순간이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조금 더 설명했을 상황.


내 입장은 이렇고,
이건 이런 이유였고,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한 거라고.


그렇게 말하면
아마
큰 문제 없이
지나갔을 것이다.


관계도
조금 더 매끄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했다.


설명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두었다.


상대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로,
조금 어색한 채로,
그 상황이
그대로 지나가게 두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괜히
내가 무책임해 보이는 건 아닐까,
오해가 쌓이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 알게 됐다.


아무 일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걸.


관계가
무너지지도 않았고,
상대가
나를 떠나지도 않았다.


다만
내가
조금 덜 지쳤다.


그게
차이였다.


이전에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나를 많이 썼다.


지금은
나를 조금 덜 쓰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고 있다.


그래서
요즘 나는
가끔 설명하지 않는다.


모든 것을 이해시키려고 하지 않고,
모든 오해를 풀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이 정도로 두는 날이
있다.


아직은
완전히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이 방식이


나를
조금 더 오래
지켜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걸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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