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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담는 일

2009년

by 모레

어린 시절을 흰둥이 모습을 떠올리려 그때 사진을 꺼내 보았다.

'왜 이것뿐이지, 정말 이것밖에 안 되나?'

사진을 많이 찍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생각보다 사진이 별로 없었다.

사진이 적어서였을까? 내 기억 속 그 시절 흰둥이 모습도 희미하게 느껴졌다.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사고가 없었다는 건 흰둥이가 특별히 아팠거나 큰 말썽을 부리지 않았다는 뜻일 수 있다. 하지만 어떤면에서 나는 좀 게으른 반려인이었을지도.

'늘 예쁘고 똑똑하고 착한 너는 최고의 강아지야'라고 말해 놓고 소중한 추억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게 그랬다.

늘 최고의, 최선의 결과물을 바라고 그 기준에 못 미치면 가차 없이 잘려나간다.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디지털 사진의 경우는 더더욱이 그렇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참 바보 같은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슨 작품 사진을 찍을 것도 아니면서 그저 일상의 단편을 한순간 찰나에 온전히 깨끗하고 맑게 포장하려고만 했다는 게 어설펐다.

조금 흔들려도, 구도가 엉망이라도, 색감이 아름답지 못해도 좋아하는 사람과 그 모든 대상의 소중한 순간을 담는 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화려하지 않고 초라한 모습일지라도 지나고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 눈에 들어온다.

그 반짝거림이 너무나 순식간에 지나가서 그때는 알기 어렵다.

오래된 아날로그 사진첩을 열어보면 참 이상한 사진들이 많다.

수정도 포토샵도 없던 시절 그저 셔터를 눌러 담아내야 했던 낡은 사진은 지금 보면 빛바랜 느낌마저 멋스럽다.



어릴적 흰둥이 사진이 많지 않다는 걸 깨닫고 보니 속상하고 미안하다.

마치 기억 일부를 도둑맞은 느낌이다. 기억과 추억이 사진에만 존재하는 게 아닐 텐데 그 몇 장 없다고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흰둥이가 행복하게 장난치던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흔들렸다'는 이유로 삭제해 버린 것은 아닐까. 완벽함 뒤에 숨겨진 소중함을 보지 못했던 나의 오만이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선명한 한 장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을 기록하려는 마음이었다. 문득 그 방식이 밤하늘의 별을 담는 사진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로 밤하늘에 별을 담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까만 밤하늘은 초점 맞추기도 힘들고 어두워서 흔들리기 쉽다.

평소보다 별이 많은 날이나, 몇 년 혹은 몇십 년 만에 유성우가 쏟아지는 우주쇼가 있는 밤

그 별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손에 들고 찍을 수 없으니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린 후 조리개는 최대한 개방한 다음 초점은 무한대로 맞춘다. 그리고 그냥 기다리면 된다.



밤하늘에 별이 지나간 자리를 카메라로 담는 것처럼 추억을 담는 일이 그런 게 아닐까.

마음을 최대한 개방하고 사랑하는 대상을 무한대로 맞추는 일, 그리고 그냥 기다리는 것이다.

배경이 엉망이라고, 예쁘지 않다고, 구도와 노출이 맞지 않다고 사진을 마구 삭제해서는 안 된다.

별이 지나간 자리는 그 순간에는 보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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