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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아, 내 수염을 자르지 마오!

2009년

by 모레

고양이의 수염은 자르면 안 된다.

예민하고 민감한 고양이에게는 수염 역시 중요한 감각기관으로 많은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는 어떨까?


고양이에 비해 주기적으로 미용을 하는 강아지는 의도치 않게 털을 다듬으며 수염도 함께 잘린다. 고양이에 반해 강아지의 수염이 기능적으로 많이 퇴화하였다는 설도 있지만 강아지의 수염도 중요한 기관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므로 자르는 것을 한번 더 고민해 봐야 한다.



강아지의 얼굴 중 수염이 있는 주변에는 약 40% 이상의 감각이 분포해 있다. 수염 주변의 예민하게 발달한 신경세포는 뇌와 직접 연결되어 외부의 자극과 주변 상황을 빠르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시각이 온전하지 않은 어린 시절이나 노환으로 시력이 감퇴했을 때 수염은 제2의 눈이기도 하다.

어두운 환경, 노화, 질병으로 시력 저하가 있을 때 수염이 센서가 되어 주변 자극과 사물을 인지한다.



강아지 왼쪽 수염을 당기면 왼쪽 눈이, 오른쪽 수염을 당기면 오른쪽 눈이 깜빡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치 경고등처럼 물체가 수염 주변에 닿거나 외부 자극이 있을 때 반사적으로 눈을 보호하기 위한 깜빡임이다. 풀숲을 헤치고 가는 걸 좋아하지만, 다리가 조금 짧은 흰둥이에게 눈 위쪽에 난 수염은 풀들로부터 눈을 보호해 주는 장치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그것이 흰둥이의 눈을 지키는 원초적인 방어 시스템이라는 것을 알고 수염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다.



흰둥이가 스스로 품속으로 파고들면 나는 감개무량해 흰둥이를 품에 안는다. 따끈따끈, 보들보들, 보송보송한 흰둥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 몇 날 며칠 밤새 괴롭히던 불면증과도 작별을 고할 수 있을 만큼 잠이 쏟아진다.


하지만 단 하나의 치명적인 장애물이 있었는데, 바로 흰둥이의 수염이었다.


수염이 센서 역할을 하는 등 중요한 감각기관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그것이 행복한 순간을 방해하는 단 하나의 흠으로 다가왔다. 일반 털과는 달리 낚싯줄처럼 삐죽 솟아난 뻣뻣한 수염은 흰둥이가 얼굴 가까이 다가와 눕거나 머리맡에서 잠들었을 때 끊임없이 내 살갗을 간지럽혔다.


특히 흰둥이가 잠꼬대로 입맛을 다시거나 눈을 깜빡일 때면, 그 작은 수염의 움직임이 얼굴을 가볍게 스치기를 반복했다. 모처럼 품에 안고 단잠을 자려는데 간질간질 간지러움에 나는 결국 얼굴을 이리저리 비틀어댈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흰둥이의 단잠을 깨우는 결말로 이어졌다. 따뜻하고 행복해야 할 순간에 수염의 방해로 품속의 온기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더 이상 이 행복한 시간을 포기하기 싫어서 나는 해결책으로 흰둥이 수염에 눈을 돌렸다.



나는 혹시 몰라 강아지 수염을 정리해도 되는지 검색을 했다. '고양이처럼 중요한 역할이 아니라 상관없다'는 내용에 안심했고, 간지럽지 않을 만큼만 흰둥이 수염을 잘라 주었다.


하지만 내가 편하자고 잘려나간 수염이 흰둥이의 감각에 영향을 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강아지 수염의 기능에 대해 다시 한번 자세히 찾아오게 되었다.


고양이의 수염이 평형감각과 물체 움직임에 따른 공기의 진동, 바람의 방향, 공간의 크기를 파악하는 정도로 예민하고 잘 발달해 있다면 강아지의 수염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고양이처럼 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만큼 수염을 잘라버린다고 큰 불편함은 없겠지만, 강아지의 수염도 분명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감각기관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수염 주변엔 많은 신경이 모여있다. 단순히 미용 목적으로 수염을 자르는 행위가 어쩌면 강아지들에겐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

한번 자른 수염은 조금 차이는 있지만 13주 ~15주면 자르기 전의 길이로 돌아온다. 만약 수염을 어쩔 수 없이 정리해줘야 한다면 너무 짧게 자르지 않아야겠다. 이왕이면 그냥 두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말이다.



수컷이라, 다 자라서

수염이 나는 게 아니랍니다.

내게 수염은 중요한 감각기관이에요.

그러니, 누님아-

내 수염을 자르지 마오.


수염을 정리하던 내가 그냥 두는 쪽으로 바뀌게 된 건 나이가 든 강아지 수염이 제2의 눈이 된다는 때문이었다. 잘라도 무방할 줄 알았던 수염은 단지 살갗을 간지럽히고 또는 깔끔하게 정리한 모습이 예쁘다는 이유로 제거되기에는 그 중요성을 너무 모르고 있었다.


흰둥이는 13살이 되었다.

아직은 크게 아프거나 제2의 눈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다.

수염이 큰 도움이 될지, 혹은 없어도 크게 상관없을지는 모르겠지만 흰둥이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니 그 수염도 이젠 쉽게 자를 수가 없다. 처음엔 그저 정리하기 바빴는데 수염의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된 후 나는 더 이상 흰둥이의 수염을 자르지 않는다.



.........
수염 센서를 작동하고
...
맞혀 볼까요?


내 머리에 뭐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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