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멍멍아~라고 불렀다.

2005년 2월 이름이 없던 시절

by 모레

물에 젖은 스웨터는 많이 무겁다.

세탁기에 돌릴 수도, 귀찮다고 매번 세탁소에 맡길 수도 없다.

물의 온도도 중요하다. 너무 따뜻한 물에 세탁하면 입을 수 없게 줄어든다.

어릴 적 엄마가 한 땀 한 땀 떠 주시던 빨간색 카디건의 기억 때문일까? 나는 까다로운 니트를 좋아한다. 내가 조금씩 자라면서 엄마는 카디건을 풀어 스웨터로 만들어 주셨고, 스웨터는 다시 조끼가 되기도 했었다. 겨울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색감이 좋았고, 부들부들 털실의 촉감이 좋았다. 무엇보다 그 옷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났다.


그날 나는 물에 젖어 무거워진 스웨터를 빨고 있었다.

처음엔 놀이로 시작한 빨래가 어느새 일로 다가올 때쯤 내 품에는 스웨터만큼이나 복슬복슬 털을 가진 강아지가 안겨 있었다. 상가 슈퍼 앞, 바로 그 강아지였다.


꼬질꼬질한 얼굴에 태어나서 한 번도 목욕하지 않은 털은 뿌옇고 텁텁한 먼지색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조금 못생겼네' 라며 나는 혼자 속으로만 생각했다.


당장 씻길 뭐가 없었다. 사람이 사용하는 수제비누로 털을 씻겼더니 털이 뻣뻣해졌다. 린스가 필요했지만, 사람용을 쓸 수가 없어 대신 베이킹소다를 물에 풀어 헹궈줬다. 이대로 탈이 나진 않겠지? 서툰 보살핌에 불안했다.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방학동안 임시보호는 온전히 내 몫이었다.

강아지는 따뜻한 봄이 오고 진짜 주인이 나타나면 곧 우리 집을 떠날 것이다.

'그러니 살뜰히 보살피되, 너무 많은 정을 주지는 말자'

이것은 어차피 떠날 인연이니 마음 아프지 않게 나 자신만을 위한 다짐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지금은 그 다짐이 너무 후회된다. 그리고 '임시보호'의 진정한 의미와 맞지 않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금방 떠날 거란 생각에 이름을 지어줄 생각도 못했다. 별 고민 없이 그냥 '멍멍아~'라고 불렀다.


강아지는 배변 훈련을 시작하고 3일 만에 스스로 화장실을 찾아갈 만큼 적응이 빨랐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멍멍아~'라고 불렀다.


보통 어린 강아지는 새로운 곳에 오면 밤에 낑낑거리며 우는데 멍멍이는 첫날부터 울지도 않고 잘 잤다. 오히려 울지 않는 멍멍이가 신기했다. 마치 10년 이상 우리집에 살았던 듯,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화장실도 척척 잘 찾아갔다. 말썽 하나 안 부리는 멍멍이가 기특했지만 돌이켜보면 늘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다.


혹시 정을 주지 말자 다짐했던 내 마음을 이 작은 생명이 읽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어린 강아지가 사랑받기 위해 존재를 지우려 눈치 본 건 아니었는지. 그것이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후회되고 가장 미안하다.


하지만 그때 나는 여전히 그냥 '멍멍아~'라고 불렀고, 그렇게 결심과 다짐을 무너뜨리는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흰둥이가 집에 온 첫날.

아주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스르르 잠들어 버린 강아지.

이때부터였을까? 흰둥이(아직은 멍멍이라 불리던)는 새 이불을 참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