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월
강아지가 단지 숨 쉬는 인형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강아지와 함께 살았던 적은 있었다.
금세 별이 된 아이도 있었고, 오갈 때 없어진 어린 녀석들을 새 주인이 나타날 때까지 잠시 보살펴 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핑계를 대자면 그때는 내가 어렸기에 한 생명을 보살피는 노력은 엄마의 몫이었다.
이불에 실수해도, 옷이나 신발을 물어뜯어 놓아도 나는 그저 꼬물꼬물 보송한 털뭉치와 노는 게 좋았을 뿐 마음을 다해 생명을 보살펴 본 적은 없었다.
한 생명을 책임지는 일은 보살펴야 할 일도 감당해야 할 일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생명을 거두는 일엔 진심과 헌신의 시간, 그리고 경제적 책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분명히 알면서도 케이지 속의 그 작은 생명에게 자꾸만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강아지들이 있던 건물의 주인은 슈퍼와 작은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내가 강아지들에게 마음이 쓰였던 이유는 새로 오픈한 식당의 메뉴 때문이었다. 건물 옆 공터엔 일명 똥개라 불리는 누렁이들도 여럿 있었고 직접 확인하진 못했지만 개들은 주기적으로 사라지고 채워지기를 반복했다.
왜 하필 그 메뉴였을까?
왜 저토록 작은 강아지들을 눈에 띄게 앞에 가져다 놓았을까?
혹시 저 작고 어린 녀석들을......?
혼자 별의별 지옥 같은 상상을 다 했다.
눈이 오는 날, 겨울비라도 내리는 날, 한파주의보가 떨어지는 날이면 강아지들이 걱정됐다. 그리고 케이지 속 세 마리의 강아지는 어느새 두 마리만 남아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설마 하는 생각에 온몸에 소름이 돋고 더 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을 만큼 아픈 기억이다. 이후 길에서 만난 슈퍼 주인은 흰둥이의 옛 이름을 부르며 반가워했지만 흰둥이는 그 순간을 매우 불편해한다. 얼마나 싫었는지 인도를 두고 차도로 내려 걸을 만큼 그곳을 지나는 것이 흰둥이에겐 가장 끔찍한 기억이었던 듯하다.
흰둥이는 믹스견이다.
한때는 보신탕집 공터에 놓인 개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나의 소중한 반려견이다.
개들은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애완견이 될 수도, 식용견이 될 수도,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 될 수도 있다.
작고 예쁘지 않아도, 모색이 훌륭하지 않아도, 좋은 혈통을 이어받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반려견이 될 수 있다. 똥개라고 불리는 개들도, 복날마다 개장수에게 팔려가는 누렁이도 모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
누군가는 "조금 더 작고 품종이 있는 걸 키우라" 권하고, 종이 뭐냐는 물음에 믹스견이라는 말뒤에 마주하는 정적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개를 키우다 보면 침묵해야 하는 순간도 많다. 편견이란 벽은 생각보다 고집스러워서 자칫 감정 소모만 될 뿐이다.
그리고 12년이 흘렀다.
여전히 사람들은 품종을 따지고 단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개식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변한 것도 있다. 흰둥이와 함께한 세월을 지켜본 이들은 더 이상 종에 대해 묻지 않는다. 개고기에 대해서도 개를 기르는 양육 방식에 대해서도 적어도 우리 앞에서는 주장하지 않는다.
사람들 생각이 근복적으로 변해서는 아닐 거다. 개를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간에 우리가 함께한 세월이 12년이 되었고 아직도 예뻐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며 흰둥이가 당당히 우리 가족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실에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조금씩 편견이 깨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진심으로 개를 좋아하고 반려해 주는 우리의 모습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당신은 어떤 개와 함께하고 싶나요?
당신은 그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 주실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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