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상황이 아닌 차악의 상황을 찾아서
예전에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것을 의지라고 생각했다. 습관 만들기의 끝은 항상 나의 의지가 한없이 나약함을 깨닫고 좌절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장인이 된 후 한동안 연초가 되었다고 의지를 가지고 습관 만들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방학계획부터 시작해서 20년 이상 매번 실패하고 좌절하는 과정에서 얻은 것은 있었다. 습관에 대한 나의 역치를 알게 된 것이다.
운동이라는 습관을 만드는 과정에서 내가 몸이 좋아지는 보람을 느끼는 것과 힘들어서 하기 싫은 감정이 드는 경계점. 다이어트를 할 때 큰 거부감이 없이 지킬 수 있는 식습관과 먹는 것을 억지로 참는 느낌이 드는 경계점. 책을 읽을 때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과 억지로 완독을 위해 달리게 되는 경계점. 그 경계점을 조금이라도 넘으면 하기 싫다는 감정과 싸워 이겨야 되는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의 의지는 유한했고, 컨디션이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바로 상실되었으며, 한번 실패의 좌절을 딛고 다시 하기에는 두 배의 의지가 필요했다.
따라서 습관을 만들고자 할 때 내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경계점에 최대한 가까이가지만 역치는 넘지 않는 딱 그 정도의 습관을 설계하는 것이다. 의지의 경계를 넘지 않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설계의 방법은 최악보다는 차악을 추구하는 것이다. 통상 내가 만들고 싶은 좋은 습관은 통상 몸에는 좋으나 입에 쓴 음식과 같다. 따라서 그 쓴 음식을 맛있는 음식 대신 먹어야 되는 상황을 만드는 것은 강력한 의지를 요구하는 나쁜 설계이고, 내가 정말 싫어하는 것 대신 먹어야 되는 상황을 만든다면 좋은 설계이다.
직장인의 하루를 극단적으로 둘로 나누면 회사와 관련된 시간과 그 외의 개인시간이다. 나는 습관을 배치할 때 나의 꽤 많은 의지를 요구하는 대부분의 습관은 회사의 시간에 배치하고, 약간의 의지를 요구하는 습관은 개인시간에 배치한다. 당연히 글쓰기는 매우 많은 의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회사의 시간에서 진행한다.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장치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일단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야 시작할 수 있다. 브런치북 제목이 글 쓰는 직장인의 마음으로 정한 것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동시에 나에게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스로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다짐과 동시에 남들도 그러겠지라는 오지랖의 마음이었다.
다음으로 습관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글감이 필요하다. 그러나 글감을 찾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책을 읽고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하는 등의 행위는 큰 의지를 필요로 한다. 내가 직장에서 일의 과정을 기록하고 그것으로부터 무언가를 느끼며 글감을 찾는 것은 그냥 일하는 것보다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글이라도 얻겠다는 최악보다는 최악이라는 생각. 그리고 또 글감은 통상 이질감에서 오는데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직장이니 얼마나 좋은가.
마지막으로 둥둥 떠다니는 글감을 하나의 글로 완성시키는 것에는 가장 큰 의지가 필요하다.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에 처음에는 집에서 밤시간에 글을 쓰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루도 지속하지 못하고 즉시 실패했다. 새해의 웅장해지는 마으로 습관 설계의 원칙을 잊고 나의 의지를 과신한 결과이다. 두 번째로 배치한 시간은 출근을 하여 근무를 시작하기 전의 시간이었다. 몇 번은 글쓰기를 잘 수행하였지만, 급한 업무가 생기는 순간 마음의 압박이 오는 상황에서는 마음은 콩밭에 가있지만 몸만 억지로 앉아있는 형국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은 글 쓰는 차악의 시간은 퇴근길 버스 안이다.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시간은 정말 빨리 지나갔으면 하루의 최악의 시간이다. 따라서 머리를 짜내야 하는 강력한 의지를 필요로 하는 글을 완성하는 데 있어 그보다 좋은 시간은 없다. 출근시간도 활용해보려 했는데 회사에 도착하면 알아서 내려주기 때문에 잠이라는 달콤함을 이기지 못했고, 퇴근시간은 혹시 집을 지나칠까 잠도 못 자는 상황이었으니 가장 좋은 설계였다.
이렇게 나는 매일 퇴근버스에서 글을 세상에 발행한다. 만약 평일인데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지겹게 버스를 타지 않고 있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고, 만약 며칠 동안 글이 올라오지 않는다면 장기 휴가를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한다. 또한 간혹 평소보다 조금 더 좋은 글이 올라왔다면 차가 막혔음에 안타까워해 주시길 바란다. 회사에 가면 글이 나오고 안 가면 즐거움이 있으니, 차가 막히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많고 안 막히면 집에 빨리 가니, 이 또한 내가 지향하는 양손잡이 직장인 그 자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