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만든 흐름을 타고 가는 감각
일의 이름을 짓는 것은 내 일의 가치를 다른 사람의 평가에 맡기지 않고 온전히 내가 평가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일의 의미를 선택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대신 선택합니다. 통상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당연히 다른 사람은 내 일의 가치를 모릅니다. 따라서 내가 이름 붙임으로써 일의 의미와 가치를 명문화하지 않으면, 다른 이가 과소평가에 휘둘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오롯이 내가 내 일의 의미와 이름을 세워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 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의 과소평가에 신경 쓰게 될 상황 자체를 차단하자는 의미입니다. 그 상황에 휘둘리고 마음상하는 것에 나의 소중한 시간을 쏟지 말자는 의미입니다. 대신 나의 한정된 시간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쏟자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고 가정이 생기고 회사를 다니다 보면 내가 시간을 쏟을 대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엉덩이가 무거워지고 리스크에 대한 민감함이 높아져 이직이나 업무를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다른 일로 바꾸지 않은 채 더욱 가치 있는 일에 시간을 쏟는 방법은 나의 일이 제대로 평가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일의 가치는 스스로가 가장 잘 압니다. 같은 일도 어떤 시장에서 하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가치를 지닙니다. 나의 일이 뛸 시장을 결정하는 것도 내가 되어야 합니다. 나의 일이 어떤 가치 있는 맥락과 스토리의 위에 있고, 거기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주장해야 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의미와 이름 짓기입니다. 회사에서 내가 온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의 일뿐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의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의 시간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쏟을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것과 같습니다.
큰 기획을 하다 보면 연결된 변수와 상황을 민감하게 보게 됩니다. 아니 봐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큰 기획을 하더라도 무게중심은 나에게 두어야지 연결된 외부에 두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와 상황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내가 스스로 끌고 가는 감각을 느껴야 합니다. 흐름을 내가 만들고 내가 만든 흐름을 타고 가는 감각을 느껴야 합니다. 큰 기획과 작은 기획의 유일한 차이는 크기일 뿐 함선을 끌고 가던 작은 배를 끌고 가던 내가 운전하며 파도의 흐름을 직접 느껴야 합니다.
나의 일과 연관된 변수와 상황은 내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인지하려는 노력은 중요하지만 애초에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분입니다. 큰 기획을 하더라도 통제의 경계를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크게 생각하다 보면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외부의 변수나 상황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거나 통제하려 합니다.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둔 큰 기획은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제가 아니라 내가 끌고 가는 흐름에 상대방이 타고 싶게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하나 억지로 끌고 간다는 느낌을 주면 상대방은 반발감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운전하고 있는 함선에 연결하여 편하게 갈 수 있는 밧줄을 던져줄 뿐 그것을 잡을지 여부는 상대방에게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단지 나의 일이 상대방의 일의 의미에 도움이 되고 필요한 것을 말해준다면 상대방은 그 밧줄을 반드시 잡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자세가 언제나 기획을 성공으로 이끌지는 못합니다. 이전에 많은 성공을 했던 기획자도 이번에도 그가 제시한 의미를 발현시킬 수 있을지는 모릅니다. 스타트업이 Product-Market Fit)를 찾아가는 과정에 기획을 비유하면, 작은 기획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좋은 시장을 큰 기획을 통해 찾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적합성이 실제로 워킹할지 여부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수많은 요소에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집중해야 될 유일한 것은 적합성을 상상하며 작고 큰 그림을 그리고 내가 할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나의 기획이 잘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혹은 희망을 갖거나, 반대로 어차피 안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이 내 마음대로 안될 것을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나의 일을 해나가는 것입니다. 이 미묘한 경계를 촉수를 세우고 명확히 인지해야 합니다. 내가 할 것은 나에게 중심을 두며 의미를 짓고, 큰 기획을 상상하며 나의 작은 기획을 켜켜이 쌓아가는 것뿐입니다. 이것이 나의 시간을 가치 있게 만드는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