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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칠이 일상꽁트 May 19. 2016

햇살 좋은 날 종로에 가면

소소한 행복 한 자락

시간은 열심히 여름으로 가고 있다. 햇살은 따갑지만 쉬지 않고 불어오는 바람 덕에 땀은 나지 않는다. 놀러 가기 딱 좋은 날이다.

'아기 엄마에겐 휴식을! 주부에겐 일탈을! 솔로에겐 주말을!' 이란 주제로 말 많고 흥 많은 여자 셋이 뭉쳤다. 가방 둘러메고 멀리 떠날 형편들은 아니지만 가까운 곳에서라도 기분을 내 보자 했다. 볼거리 많고, 갈 곳 많고, 먹을 것 많은 종로에 아늑한 숙소를 잡고 인사동과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보는 나름의 코스를 짠다.


역시 사람구경은 인사동

어째 영어보다 더 이국적이게 느껴지는 한글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한글로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눌러쓴듯한 '스! 타! 벅! 스!'에서 카라멜라떼를 사들고 인사동 탐방에 나선다. 곳곳에 기념품 가게들이 즐비하다. 자개로 곱게 만든 보석함이며 색감 고운 부채들, 천연 염색한 생활한복들에 잠시 정신을 뺏긴다.

쌈지길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줄을 서서 계단을 올라가는 길이 느리고 답답하다. 사람들은 아예 복도에 자리를 잡았다. 개구져 보이는 삼남매는 더 이상 가지 못한다며 널브러져 버렸고, 난감한 아빠는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며 아이들을 잡아끈다. 간만의 가족 나들이가 저렇게 끝이 나는구나 싶어 웃음이 난다. 기차놀이를 하듯 앞사람의 뒤통수를 따라 쌈지길을 빠져나온다.

인사동 거리는 다양한 예술가들이 있다. 10대 소녀들로 구성된 타악 연주팀이며, 기타를 치는 사람,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 무전여행 중이라며 솥뚜껑처럼 생긴 이름 모를 악기를 두드려대는 거리의 음악가 앞에 잠시 걸음을 멈춘다. 둥기둥기둥땅땅 신기한 소리가 난다. 관객들은 케이크며 생수, 작은 돈으로나마 잘 봤노라 성의표시를 한다. 나도 작은 선물을 놓고 자리를 떠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모습이 부러웠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일지라도 저 사람의 여행 끝이 좌절이 아닌 성취감이길 빌어본다.


먹을 것 많은 삼청동

인사동 거리 끝자락에서 횡단보도 하나를 건너니 삼청동이다. 이날은 '서울시 여성 공예 대전 수상자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죽공예며 액세서리, 향수, 디퓨져, 옷 등 수많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상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꼼지락꼼지락 바느질도 하고, 실뜨기를 하고 있다. 북적북적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생동감 넘치는 모습이다.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들을 사고,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삼청동 한복판에 들어와 있다. 줄을 서서 먹는 유명한 떡꼬치며, 전주에서 봤던 문꼬치 등 이런저런 군것질거리가 가득하다.  양손에 간식거리를 사서 배가터지도록 먹고 또 먹는다.


추억여행 국립현대미술관

다시 한참을 걸어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다. 다양한 추억여행 요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전차, 음악다방, 양품점, 과거의 교실 풍경. 너무 예전이라 모르는 것이 많다. 그래도 나는 시골에서 나고 자라 도시의 친구들보다는 조금 더 익숙한 풍경이다. 풍금 앞에 잠시 눈을 멈춘다. 국민학교 1학년이었던가? 양발을 재게 놀리며 건반을 치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란 체육복을 입고 종종종 뛰던 나에게 병아리 같다며 자주 말씀을 하곤 하셨는데.

인쇄소에서 예전 인쇄기도 본다. 그리 먼 옛날이 아닌데도 경천동지 하게 변해버린 인쇄사업의 현실이 무척이나 놀랍다. 한 자 한 자 활자판을 맞춰 수동으로 인쇄기를 돌렸나 보다. 지금은 필름조차도 사라져 버린 시대인데.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고 있다.

직업병인가? 옛날 맞춤법이 눈에 들어온다. '돐' '라듸오' 이제는 어색해져 버린 글자들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지금도 인터넷 용어를 보면 외계어를 보듯 생소한데 몇 년 후면 지금 말과 단어들도 또 새로워져 있겠지?


이렇게 우리의 종로 여행이 끝이 났다. 좋은 날씨가 크게 한몫을 한 날이다. 종로는 이곳저곳 볼 것이 많고 먹을 것도 많다. 청계천을 따라 도란도란 수다 꽃을 피우며 숙소로 걸어 들어간다. 발이 아프도록 돌아다녔지먀 마음은 한가했고, 전투적으로 구경했지만 머릿속은 여유로웠다.


종로는 복잡하고 시끄러운 서울 한복판이지만 멀리 여행을 떠나온 듯 기분 좋은 그런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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