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푼다는 것은 결국 나를 위한 것이다.

by MOAI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았을 때는

나는 그것에 대해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가로부터

그것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것에 대해 설명하려 하면

나는 더 이상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알고 있지만,

내가 깨우치지 않으면 진정 아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회사에서 팀장을 맡고, 팀원에게

가진 지식을 알려줄 때

두 가지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첫째, 내가 아는 게 전부가 아니더군요.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전달할 때는

일부보다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가령, 책을 한 권 읽어도

남에게 설명해할 때는 읽었던 양에 비해

일부만 아는 내용만 꺼내집니다.


배우는 사람은 모든 것이 0에서 출발합니다.

0을 채우기 위해서 전달하는 사람은

많은 걸 다시 공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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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2381.jpg?type=w773 출처: 드라마 사랑의 이해

둘째,

남에게 전달하며 베푼 좋은 감정이

자신에게도 생긴다는 점입니다.

남에게 내가 가진 지식을 전달하려는

감정이 나를 노력하게 합니다.

오히려 도와주려고 했던 것이

도리어 나를 도와주고 있는 셈이죠.

팀원도 새로운 것을 알아서 기분이 좋지만,

나 역시 더 알게 돼서 기분이 좋습니다.

IMG_2385.jpg?type=w773 출처: 유퀴즈 온 더블록


방송에서 김주환 교수도

타인을 행복하게 해 주었을 때 자신 역시

행복해진다 말했습니다.


사람은 인정욕구가 충족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무인도에서

아무도 나의 성공을 알아주지 않거든요.


사회에서는 여러 사람이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하면 인정해 주고 칭찬도 해줍니다.


그럴 때, 자신의 어깨도 으쓱해지는 법이죠.




언젠가 아이에게 스케이트를 가르치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엔 빙판에서 걸어 다니다가

맘껏 휘저으며 달릴 때, 아이의 웃음이 잊히질 않습니다.


저도 미소를 짓게 되고요.


베풀기에 나눔을 생깁니다.

하나보다는 둘.

둘보다는 넷


베풂은 1이 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윈윈 하는 것입니다.




매사에 인정을 베풀면

훗날 기쁘게 다시 만난다.

凡事留人情(범사유인정)

後來好相見(후래호상견)


명심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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