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눈치라는 걸 배웁니다.
눈치가 빨라야 학교나 사회에서
인정을 받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하죠.
사람은 본능적으로, “남 눈치 보는 것”에 굉장히 익숙합니다.
우두머리에 대한 무한한 신뢰도 한몫을 차지합니다.
우두머리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기에, 눈치라는 걸 보게 되죠.
한편, 우리는 "남의 눈치 보는 것"에 비해 '남을 배려하는 것'에 취약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사회 분위기 탓에 도움을 주는 것은
곧 나의 이익을 뺏긴다는 의미로 읽힙니다.
우리라는 집단 속에서 벌어지는 '팔이 안으로 굽는' 행위는
좁은 의미에 배려라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눈치를 보는 것이 과연 내 삶일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성취하는 것이 아닌
누구의 ‘허락’이란 걸 받아야 그다음 단계를
갈 수가 있는 것이죠.
이것은 내 삶을 마음대로 주도할 수 없단 이야기입니다.
반대로, 남을 배려한다는 것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준다는 것은 내 의지가 반영돼서
벌어지는 자발적 행위입니다.
이것은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가지고 있다는 걸 뜻해요.
양재웅 정신과 의사는 '눈치'와 '배려'대해 이렇게 정의합니다.
"‘눈치' 보는 사람은 저 사람이
'날 싫어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고,
'배려'하는 사람은 내가 이 사람에게
‘뭘 해줄 수 있지'를 생각합니다.
눈치는 결정권이 상대방에게 있고
배려는 결정권이 나에게 있어요."
회사 생활에서 대한 아낌없는 조언도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번아웃에 빠지거나
슬럼프가 자주 오는 분들을 살펴보면
평소에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살피고
그들의 반응에 민감한 분들이 많습니다.
이런 분들은 일과 자신을 동일시해서
일이 잘 풀리면 내가 괜찮은 사람 같고
최선을 다했어도 일이 잘 안 풀리면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여깁니다.
내 인생의 '행복 점수표'가 내게 없고
상대방에게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내 가치를 상대방이 정해주는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을 살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입니다.
결정권에 따라 수동적 혹은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가 정해집니다.
일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발견합니다.
시키는 일만 하게 되면, 그 일에 대해 주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하고 쉬운 업무에만 하다 보면
생각이란 걸 멈추게 됩니다.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탐구정신이 요구됩니다.
이해가 가지 않다면,
"왜"라는 것을 붙여서 생각을 하고,
그 문제에 대해 깨우치는 과정을 겪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되니까요.
그렇게 주체적으로 얻은 양식은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직장 선임이 후임에게 알려주는 노하우 같은 것이
해당이 되겠죠. 일종의 치트키죠.
나의 지식을 여러 명에게 전해주고
도움을 주는 삶이야말로
주체적인 살아간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sns를 활용해서 내가 가진 지식을
설파하고 공유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것은 넓은 의미에서 배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삶을 주도하고 싶다면,
남의 눈치보다는 내 눈치를 봐야 합니다.
행복 점수표는 남이 아닌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