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바느질

by MOAI


"나도 남 못지않게 나그네였다.


내 방식대로 진종일 대부분의 시간


혼자서 여행을 했다.


서산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했고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면서도,


서억서억 톱이 움직이며


나무의 살갗이 찢기는 것을,


그럴 때도 여행을 했고


밭을 맬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여행을 했다.


...


다만 내 글 모두가


정처 없던 그 여행기


여행의 기록일 것이다."


<박경리,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여행"중에서>






지난여름 글로 만난 지인으로부터


책 한 권이 도착했습니다.



택배 상자를 열어보니


'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작은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홀가분하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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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페이지를 여니


글친구의 작은 손 글씨의 안내와 함께


책갈피까지 따뜻한 손길이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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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 국어 시험에서 단골로


출제되었던 것이 "토지"였습니다.



사투리도 섞이고 단어도 옛말들이 많아


가뜩이나 독서를 싫어했던 나에게


토지를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웠습니다.



그렇게 멀리했던 작가의 책을


가벼운 시로 다시 만나다니 오래 살고 보라는


어른들의 말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마냥 어렵다고 문제만 풀어야 했던


작가의 좋지 못한 인연을 안녕하고


말랑한 시로 다시 마주한 점이


반갑기만 합니다.





읽다가 멈춘 시 한 편이 있습니다.



"바느질"이란 시입니다.


읽어보면 글을 쓰는 이들에게


공감을 자극할 거라 생각해


여기에 한 번 적어보겠습니다.




<바느질>



눈이 온전했던 시절에는


짜투리 시간


특히 잠 안 오는 밤이면


돋보기 쓰고 바느질을 했다.



여행도 별로이고


노는 것에도 무취미


쇼핑도 재미없고


결국 시간 따라 쌓이는 것은


글줄이나 실린 책이다.



벼개에 머리 얹고 곰곰이 생각하니


그것 다 바느질이 아니 었던가


개미 쳇바퀴 돌듯


한 땀 한 땀 기워 나간 흔적들이


글줄로 남은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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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삶을 회고하면서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던 모습과


글을 한 줄 쓰던 모습이 교차했던 모양입니다.



글을 쓰는 이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


이에 대한 답가를 적어봤습니다.




인생이 숲이라 하면,


글쓰기는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이다.



나무 한 그루씩 심어 숲을 만들고,


그렇게 해서 글쓰기는


내 삶의 한 점을 찍게 된다.



수많은 점들은


다시 선으로 모이고


그리고 다시 면으로 다시 숲으로.



매일 글을 쓴다는 것은


꾸준히 나를 성장시키겠다는 다짐.



매일 수놓는 생각의 씨앗을


모아 모아 땅에 심어 본다.



그렇게 땅에 심었던 씨앗은


조금씩 자라 가지를 뻗고 영양분을 받아


더 큰 나무로 성장하겠지.



오늘도 하얀 도화지에


어떤 점을 찍을까 고민하다가


이렇게 점 하나를 찍고 가네.






매일 글을 쓰면서


이런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겨져 있는 나날에


점하나 찍고 가보자고.



매일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던


시간을 이제는 글로써 붙잡아


새기고 갑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다 보니


점 하나가 이제는 그냥 점이 아니라는 걸


느낍니다.



한 땀 한 땀 수놓다 보면


언젠가 내가 만든 옷 한 벌처럼


이름이 새겨진 책을 만날 수 있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