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데까지 가거라.
가다 막히면 앉아서 쉬거라.
쉬다 보면 새로운 길이 보이리."
<김규동, 해는 기울고>
지난주 중이었습니다.
그날따라 업무가 다른 날에 비해
다소 많은 편이었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한쪽 눈에서 심한 통증이 오더군요.
몸이 좋지 않을 경우,
종종 이런 신호를 보내곤 합니다.
잠을 대략 10시간 이상 자고 나면
그다음 날은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아
식사를 마치고 30분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기상을 한 뒤에도
여전히 눈 통증은 남아 있었지만
이 정도는 괜찮겠다 싶어
출근 준비를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지하철역으로 가는 마을버스는 앉아서
가기에 별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지하철을 타고 선 채로 가자
어지럼증과 천장을 바라보니
노랗게 보이더군요.
몇 정거장을 출발한 뒤
정거장에 내려 호흡으로 가다듬었습니다.
어지러움은 가시지 않아서
회사에 병가 처리해 달라고 연락을 했습니다.
물론 그날 처리할 일은 있었지만,
일보다 내 몸이 먼저라 생각했습니다.
일이야 하루 정도 미루어져도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면 얼마든지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어릴 적 초등학교 시절 아프면
부모님은 "아파도 학교는 일단 가라"라고
강조하고 타이르곤 했습니다.
목적이 어떠한 경우에도
성실성 하나만큼은
몸에 배기 위함이었을 겁니다.
그렇지만 수업은 고사하고,
아픈 채로 책상에 엎드려 누워있던
힘든 기억만 남아있습니다.
아프면 열정이고 뭐고 허락하질
않게 되잖아요.
부모가 막상 되고 나니 아이가 아프면
저 때와는 달리,
학교를 보내기보다 휴식을 취하도록 합니다.
(물론 시대 분위기가 저희 때와
사뭇 다르긴 합니다만.)
정상적으로 수업도 듣지 못할뿐더러
학우들이나 선생님도 신경 쓰일 건
뻔하기 때문이죠.
성실성은 무조건 회사나 학교를
빠지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릴 적에야 나라가 성장을 추구하기에
성실을 빗대어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겼던 분위기가 강했던 것이죠.
성실이란 사전적으로
정성스럽고 참됨을 의미합니다.
적어도 내 몸이 괜찮아야
일이나 공부에서
정성을 더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 몸을 챙기는 것이
먼저입니다.
우리는
내 몸을 마음대로 할 권리도 주어지지만
동시에 정성껏 관리하는 책임도 가지고
있습니다.
건강보다 어떠한 것도
앞지를 수 없습니다.
건강을 챙긴 뒤
처리할 일은 그다음에 해도
결코 늦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