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시도 고양이 김동동
붉은 열매들이 환청의 하늘 위에 시들고 있다. 나는 들지 않는 칼을 들고 희망을 자른다. 내가 귀 기울일 때마다 그들은 울음을 그친다 우리의 그리움 뒤쪽에 사는 것들이여, 그들은 흙으로 얼굴을 뭉개고 운다.
- 이성복-
고양이와 살다 보면 가끔 환청이 들린다. 아니 만성 이명 탓인지도 모르지... 집을 짓고 고양이를 기르기 시작했을 무렵 고양이가 자꾸 내게 말을 걸어왔다. 이성복의 환청일기라는 시를 읽었는데 도무지 은유와 은유 사이가 너무 미끄러워 중심을 잡을 새 없이 자꾸 졸딱 졸딱거리기만 하다가 읽기를 포기했다. 삼 년쯤 같이 살아보니 고양이의 뒤쪽에서 흙으로 얼굴을 뭉개고 우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져서 고양이 언어 번역 앱을 깔아 테스트해 보았다. 그 후로 고양이 김동동이 아침저녁으로 내 배위에 올라와 한참 동안 꾹꾹이를 해대는 그녀만의 규칙적인 일과가 생겨버렸다. 먹성대마왕 조추추는 길 건너 먹이 사냥 갔다가 새벽질주차량에 비명횡사했다. 그 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내 거실을 고양이들이 점령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