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질년
조마담의 뱃속으로 네가 찾아온 것을 알았을 때는 네 나이만큼 거슬러 올라간 해 4월이었지 무일푼 알거지 학생이었던 니 애비가 조마담과 단칸의 전세방에 살림을 차린 지 1년 만이었나 보다. 개솔린과 디젤의 불연소 개스 가득했던 털털 시내버스는 산부인과를 향하고 있었고, 너를 네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야 하는 것인지, 너를 환영해야 할 것인지를 몰라하며 망연히 조마담의 눈치만 살폈단 말이지. 내겐 너에게 우유를 사 먹일 돈초차 없었고 그런 애비가 된다는 것은 너무 나도 황망한 일이었거든.
조마담과 함께 산부인과 입구를 나란히 걸어 들어가는 내 눈에 4월 화창한 햇살 아래 소담하게 올라오는 목련의 새싹 봉오리가 눈을 찔러오더구나. 막 피어난 목련 꽃과 새 봉오리들이 나를 무조건 백기투항하게 만들었지. 어쩌면 그 목련 꽃봉오리가 너를 이 세상으로 소환하는 수호신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목련꽃 봉오리가 붓 모양을 닮아서 木筆이라고도 부르더구나 그래서 그런지 너는 붓그림을 잘하는 모양이다. 네가 태어나며 처음 터트리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내 가슴에서 뭔가가 쑤~욱하고 분만실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던 신묘한 경험이 아직도 생생하구나. 잘자라 주어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참 좋다. 내게 대들지는 마라... 오라질년.
오리온 고래밥
유치원 다녀온 딸 년과 오리온 고래밥을 먹다가
딸
오징어, 문어, 불가사리.... 아니야 원래 별이었어 불가사리가 아니야 아빠.
아빠
그래 원래 별이었어. 그것도 그냥 별이 아닌 빠알간 사랑의 별이었지
그것이 바다에 떨어져서 불가사리가 된 게야
사랑을 하게 되면 바다가 그리워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어
너도 이담에 커서 사랑을 하게 되면
바다가 몹시 그리우리라
그때쯤이면
넌 얼마나 아파할까
커져만 가는 불가사리를 가슴에 품고
1996년 12월9일 0시 23분 강남고속터미널 - 도해씨-
라고 메모해둔 윤대녕의 '정육점여인에게서'라는 단편 소설집의 속표지에 기록해놓은 내용을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