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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Jul 04. 2023

그리움 마다 종이 하나 접었다


그리움 마다 종이 하나 접었다


배를 접어 띄웠다.

종이배를 띄웠다. 어린 물고기 한 마리 따라 내려갔다. 저녁이 다되었는데 그놈은 돌아왔는지 저녁 밥상 내내 궁금했다. 잠들 무렵 되자 달빛이 온 강변을 둥글고 하얗게 만들던 먼 옛날 우리 젊은 날의 강변에 내 종이배 도착했는지, 내 마당에 밝은 달빛이 어제와는 다르다. 


꽃을 접고 탑을 접어 세웠다.

꽃피는 계절이면 플랫폼 주변에 꽃 잔디가 만발했었다. 오 층 석탑이 있어 마을 이름은 탑리였다. 천년을 지켜온 감실의 이끼 낀 어둠이 전하는 긴 세월의 침묵과 신비는 내 굳은 목줄기를 떨게 하고 마른침을 삼키게 했었다. 하얀 꽃 잔디가 만발한 탑리역 밤의 플랫폼에서 바라보던 금성산의 둥근 보름달. 기다리던 상행열차가 느리게 들어오는 동안 둥글고 큰 달 아래 하얀 플랫폼 위 작은 점 하나로 서 있었다. 기차는 떠났고. 승차하지 않은 나는 유난히 하얀 플랫폼에 혼자 남아 천년의 석탑처럼 한참을 서 있었다. 꽃과 침묵과 밤의 산과 달빛이 밝혀주는 철길이 그리는 길고 완만한 곡선이 함께했다. 신비라고 할 밖에. 때맞게 시간도 멈추었으니.


종이 자를 만들어 물컵에 넣었다.

한사코 줄 세우고 키재기로 연명해온 삶. 사람들은 너무 쉽게 살려 했고 나 또한 쉽게 동화되었다. 직선과 기하에 능하기 위해 섬세를 포기했었다. 아무렇지 않았지만. 결국 나는 내 노동에서 나를 소외시키게 될 것을 일찍 예감하고 있었다. 심한 갈증이 허덕였으나  그때의 나는 나를 알지 못했다. 그때의 그 정체 몰랐던 갈증이 그립다.


신발을 접어 선반에 모셨다.

산과 강물과 바다를 찾는 사람. 직선에서 한참을 벗어난 그 사람의 걸음에 취해 한 때 함께 했음이 그나마 내 삶이 건져 올린 것. 은화 한닢처럼 남겨진 소득. 그이가 잘 다니던 바닷가 산길 모퉁이에 쌓아 올린 돌탑은 여전할까 궁금했다. 그이의 등산화. 붓과 낡은 책들과 함께 소각되었겠지. 기도가 멈춘지 오래된 그의 창가 선반신발을 접어 올렸다. 이웃집 개가 컹컹 짖었다. 적멸에 있으시길.

 

소를 접어 숨겼다. (尋牛의 추억)

검은 놈인지 흰 놈인지 누런 놈인지 알 수 없지만, 오래전 아주 오래전에 견적見跡한 바 있었으나 이젠 다 잊었구나. 저자에서 개싸움이 하면서 한심하게 술에 절어 세월 가는 것만 물끄러미 강물에 띄워 보고 앉았으니, 누가 내 정수리에 강한 죽비 한방 내려 주었으면. 복날을 잊은 개싸움 같은 인생. 언제부터인지 고의로 잊었던 신중한 소 발자국.


새를 접어 날렸다.

새 한마리 접어 날렸다. 형편없이 취했으니 이제 잠들어야 한다. 멀리 날아 낙동강 하얀 모래사장의 둥근 하늘 위로 음주비행할 것이다. 하늘에는 음주단속이 없으니  그날 밤 그 하늘 위에 잠시 머물다 먼먼 내 집으로 다시 안전하게 돌아올 것이야. 달이 밝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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