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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씨 Aug 09. 2023

털없는 유사직립보행동물의 인문학

털없는 유사직립보행동물의 인문학


좁고 옹색한 사무실에 8~9명의 직원이 잡다한 집기들과 업무용PC를 가져다 놓고 업무에 관련된 사물을을 올려다 놓으면 서류철 하나 넓직하게 펼쳐 놓을 공간도 안되는 곳이었다. 캐비넷과 공유프린터 복사기등이 자리한 곳을 피하다 보니 등을 맞 댄 직원이 자리를 뜨게 될경우  뒷사람의 의자 등받이와 충돌을 피해야 했기 때문에 매우 공손한 행동 습관을 자연스럽게 갖추게되는 어쩌면 개인수양에 바람직한 업무환경이엇을까? 그 외에도 불편을 열거하자면 도무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옹색한 환경의 사무실이었다. 그런 좁은 곳에 넓은 양수 책상을 사무실 한가운데 가져다 놓고 한 눈에 일하는 직원을 바라보아야 직성이 풀리는듯한 그의 자리 주변은 기분나쁠정도로 넓고 쾌적하다.  물리적 소통이 불편한 곳에 사람을 몰아다 놓고 한사람의  시선을 위한 공간배치는 18세기적 비인간의 공간이다. 21세기에도 이런 공간은 아직도 어디나 아무렇지 않게 널려있다.



그는 10명 남짓 근무하는 그 옹색한 사무실의 넓다란 양수책상의 소유자이자  소음 발생기였다. 출근 후부터 퇴근시까지 쉬지 않고 무언가를 입을 통해 내뱉어야 한다. 애초에 그의 습성을 알아채는 데는 단 이틀이 소요되었다. 무슨 폭포도 아니고 정말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무언가를 지껄이며 사무실 바닥에 쏟아내고 있다. 퇴근할 무렵이면 우리는 철벅거리는 바닥에 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살금살금 깨금발로 걸어야 했다. 그가 하루 종일 배설하던 말들 중에는 대체로 주어 담을 만한 것들이 없는데 , 혹 그 너절하게  늘어진 것들 중 하나가 내 업무와 연관되어 있다 싶어 건드리거나 밟게 되면 퇴근 후 그와의 술자리가 자동 예약되는 참사를 겪어야 했다.


그는 왕십리 CGV의 VVIP라고 스스로를 매우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으며, 한국사 자격증을 취득했노라고 틈이 나는 대로, 생각이 나는 대로,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하시라도 자랑해대었다. 요는 자신이 인문학의 마스터 급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때는 인문학이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번지던 때였다.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혹은 영어로 쓸 줄이나 알려나 하는 의심조차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유난히 갑질을 해대는 관리자였는 그는 인문학이라는 단어의 그 "인" 이 뭔지 모르는 인간이었다. 인문학이 무슨 반지나 목걸이 시계류의 액세서리 정도로 알고 있는 인간이었다. 


플라톤이 내로라하는 철학자들 앞에서 특유의 잘난척하는 자세로  인간을 규정하길 "인간은 깃털이 없는, 두 발로 걷는 동물이다"라고 정의하던 현장에 벌거숭이 괴물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털 뽑은 닭을 들고 난입하여 "그럼 이놈도 인간이겠네" 했던 그 털 뽑은 두 다리의 유사 직립보행 동물을 생각하곤 했었다. 그의 뒤통수를 바라볼 때 마다. 


아무튼 재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데는 어떠한 오류도 발생할 염려가 없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 두 다리 가진 유사 직립보행 동물은 유난히 목청이 좋고 목소리를 멀리까지 보내는 능력을 타고난 생물인 바. 우리의 그 갑질 관리자도 신기하게 목청이 좋았다. 노래를 너무 잘했다. 흉통이 유난히 큰 작은 키의 소유자였는데 흔히 말하는 그 역삼각형의 체형이다. 그가 You raise me up.이라는 고상한 노래를 부를 때면 모르는 사람들은 그의 노래 탓에 팔뚝 언저리에 소름이 돋을 만했다. 우리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그것을 팔뚝에 오물이 튀는듯하게 느끼며, 우리는 늘 you make me down! damn! 하게 되는데는 긴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가 말을 많이 하는 만큼 아래 직원들의 의견이나 말을 정성 들여 들어 주었더라면 그는 그럭저럭 관리자로서 위치를 위협받지 않았을 텐데 그는 엄청난 수량을 가진 폭포이어서 그 아래에서 뭔가를 말하려는 시도가 먹혀들지 않았다. 주변의 모든 소리를 묻어 버리는 폭포를 생각하면 된다. 정말이지 하루 종일 뭐든 지껄이며 쉬지 않고 쏟아내야만 하루를 연명할 수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사무실 바깥 텃밭의 고추가 시들한 이유에 대해, 무슨영화를 관람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영화 이야기는 뒷전이고  왕십리 CGV의 관람석의 불편과 개선 방법에 대한 장광설, 최근의 기후변화를 다룬 뉴스 한꼭지에 대해, 조선의 건국 비화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흥미롭다는 사건에 대해, 업무 상의차 방문한 별실 직원의 업무와 관련인지 무관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이야기들이 어제와 그제와 지난달끼지의 시점을 거슬러 오가며 만들어 내는 소음들이 하루종일 작은 사무실을 울려대어야 하는데 무슨 필연성이 있는 듯 느끼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순전히 나의 추측이지만. 문득 그의 생존동기는 '폐의 본능'에 의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치 자신의 폐활량을 충족시켜 주지 못한다면 전전반측의 자못 인문학적 밤을 보내야하는 남모르는 고통이 있는 인간인가보다 했다. 이어서 나는 폐의 본능에 예속된 듯한 가련한  한 인생을 목도하고 있다고 결론하였다. 측은하지는 않았다. 하루종일 소음발생기 역할을 하느니 근사한 조깅이나 마라톤을  취미로 하든지, 노래연습실에서 그 커다란  폐의 생존본능을 주기적이고 부족없이 충족시켜 주든지, 색소폰이라도 멋지게 불어보던지. 좀더 슬기로운 습관을 만들었어야 했다. 하루종일 옹색하고 불편한  사무실에 앉아 소음발생기 역할을 하느니 보다 얼마나 건강하며 생산적인 모습인가 말이다.


한가지 일을 기획하였고, 시키지 않았던 일이었으되, 다수의 편의와 업무의 효율성을 염두에 두었던 시도였다. 그가 제지했다. 별다른 이유가 되지 않은 궁색한 제지였다. 이유가 있다면 비정규직이 담당했던 업무이니 그냥 그대로 맡겨놓으면 되는 일에 신경 쓰지 말라는 취지였다.


신경 소모가 많으며, 부담스러운데, 비일상 업무라 규칙성이 없는 일이었다. 때를 놓치면 많은 것들이 흐트러지고 망쳐지지지만 누군가는 해아 하며 그닥 주목도 받지 못하는(일 같지도 않은 일이라는 인식) 일이었다. 반복해서 재가를 요청하였다. 혹시 발생할 지 모를 부작용에 대한 대책도 설명한 후였다. 반복한 만큼 제지하던 그에게서 들려온 마지막 언사는 "경력이 그마이나 되얐으면 내 말을 알아먹어야 될게 아니야!"였다. 


초강력 분수 한방을 그 폭포에다 대고 쏘아 올렸다. 그 기세는 호연지기였지만 그 호연한 기운의 구체화는 시장바닥의 개싸움에서 아니 닭싸움에서나 오갈 형상과 소리였다.   " 그래 안 해 X팔! " 기안 서류가 그의 왼쪽 뺨을 지나 뒷면 벽에 부딪혀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졌다. 얼결에 두팔로 방어자세를 취하며 " 뭐? X팔?"하며 반응하는 털없는유사직립보행동물에게 " 그래! X팔!"하며  확인 사살해주었다. 순식간에 분노에 사로잡혀 그 털없는유사직립보행물로 퇴화해버린  나는 머리를 주억거리는 조류의 특유의 걸음으로 현장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머리 끝에 달라 붙은 빨간 벼슬이 흔들 흔들  더 붉게 타오를  지경이었다. 복도를 지나 담배 한대 태울 요량으로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던  나의 핸드폰으로 여기저기서 톡이 날라왔다.  "대에박!" "화이팅" " 어머 부장님 시원해 죽겠는데 또 불안해 죽겠어요" 따위 들이었다.  이어지는 톡! 톡!이 웬지 곡! 꼭! 꼬댁! 하는 소리 같았다.


경청과 소통이 강조되고 배려를 들먹이지만 항상 상황을 통제하는 것은 누가 더 큰 권력을 가졌는가와 누가 더 많은 재화를 가졌는가이다. 권력과 재화의 입장에서 준비된 일리 一理 가 합리로 둔갑하고 이어 그것이 진리 인듯 치장되는경우를 많이 목격해왔다. 쌍방의 소통은 그럴 경우 무용한 전설이다. 설득 없는 강요를 소통이라 믿는 인간들이라니.  뭐 기대할 바가 별로 없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어지는 날들을 보내던 어느 하루의 일이었다. 창의적 업무개선이라는 닭 사료만도 못한 구호가 남발되고  소통과 배려의 표어가 차가운 시멘트 벽에 붙어 있지만 벽창호라는 단어가 생각나게하는 나의 조악하기 짝이없는 밥벌이터.  좁은 닭장 같은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일상적인 풍경의 한 기록이다. 인문학! 인문학!하는 시대의 조류야생학적 풍경이랄까? 아니 조류사육학적 풍경이라고 해야 옳을 듯.


퇴근후 그가 빠진  조촐한 회식이 있었는데 내가 치킨에 소주를 고집했다. 그 털 없는 유사 직립보행 동물은 더 큰 권력에 올라타고선 가는 곳마다 그렇게 물의를 빚고 다닌다는 후문이다. 걱정도 안됀다. 그냥 꼬꼬댁! (네 뜻대로!)할 뿐.  그해 나라를 대표하던 그네를 잘탄다는 커다란 닭이 있었는데  여행의 기쁨에 들떠있던 생때같은 아이들이 물속에서 몰살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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