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체할 수 없는 87년생의 아픔

by 모아키키 정세복

2022년 10월의 역삼역 스타벅스에서, 87년생 세 남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부의 열차를 앞에 두고도 '오늘 저녁 메뉴'를 더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1. 엔비디아와 가죽 재킷의 등가교환


재혁이 비장하게 노트북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초록색 로고의 'NVIDIA'가 떠 있었다.


"야, 잘 들어. 이게 젠슨 황이라는 형님이 하는 건데, 얘네 칩이 없으면 AI고 뭐고 아예 안 돌아간대. 내 생각엔 이게 제2의 비트코인이야."


2026년의 독자라면 여기서 환호했겠지만, 2022년의 재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지금 주가가 110달러까지 처박혔어. 무서워서 누가 사냐? 그리고 나 어제 결정사 매니저한테 한 소리 들었단 말이야. 인상이 너무 '폐유 업자' 같대. 그래서 이거 살 돈으로 젠슨 황이 입는 거랑 비슷한 가죽 재킷 하나 샀다. 120만 원 줬어. 어때, 좀 부자 같냐?"


재혁은 엔비디아 주식 10주를 사는 대신, 결정사 재매칭을 위한 '전투용 가죽 재킷'을 선택했다. 훗날 그 가죽 재킷이 수억 원짜리 '황금 갑옷'이 될 기회비용이었다는 사실을 그는 꿈에도 몰랐다.




2. 테슬라와 명언의 상관관계


지훈은 머스크의 명언이 붙은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보탰다.


"재혁아, 가죽 재킷이 뭐냐. 남자는 혁신이지. 테슬라 봐라, 지금 반토막 났을 때 주워야 해. 근데 문제는 우리 회사 서버비가 밀렸어.

개발자 녀석은 내 월급보다 더 가져가면서 맨날 연봉 올려달래.

내가 테슬라 1주 살 돈이 있으면, 그냥 우리 애들 회식이나 시켜주고 마음 편히 자고 싶다."


지훈은 세상을 바꿀 AI 로봇 '옵티머스'에 감탄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유통기한 임박한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며 '혁신적인 가난'을 실천 중이었다.




3. 애플과 5,000자의 진심


민준은 가장 보수적인 '애플'을 가져왔다.


"난 그냥 애플 살래. 근데 얘들아, AI가 아무리 똑똑해져도 내 연애 앱 프로필은 분석 못 하더라. 내가 이번에 '애플처럼 심플하지만 혁신적인 남자'라고 5,000자로 자기소개 고쳤거든? 근데 바로 차단당했어. 왜일까?"



민준에게 애플은 세계 최고의 기업이 아니라, 차가운 도시 남자의 이미지를 빌려오기 위한 '브랜딩 도구'일뿐이었다. 그는 시가총액 1위 기업의 주주가 되는 것보다, 연애 앱에서 '좋아요' 한 번 더 받는 것이 훨씬 간절했다.






시대적 아이러니: "주식보다 삼겹살"


스터디 시작 15분.


'엔비디아', '테슬라', '애플'이라는 거창한 이름들이 테이블 위를 떠다녔지만, 결국 결론은 87년생의 고질병으로 수렴했다.


"야, 주식 얘기하니까 기 빨린다. 주가 창 보느라 눈 아픈데, 이거 시력 회복하려면 돼지기름이 좀 들어가야 하지 않냐?" 재혁이 가죽 재킷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인정. 복리의 마법이고 나발이고, 지금 당장 내 위장에 소주 한 잔 안 넣어주면 내가 먼저 소멸하겠다." 민준이 가방을 챙겼다.


지훈이 마지막으로 노트북을 덮으며 결정타를 날렸다.


"어차피 우리 돈 없어서 못 사잖아. 공부만 하면 뭐 해? 그냥 가서 고기나 굽자.

야, 오늘 엔비디아 발표한 재혁이가 쏴라!"






훗날 시가총액 세계 1위를 다툴 기업들의 가치를 15분 만에 '지루한 얘기'로 치부해 버린 세 남자는, 그렇게 역삼역 뒷골목 삼겹살집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발로 뻥 차버리고 '오늘의 즐거움'을 선택한 세 남자.



그들은 부자가 될 기회는 놓쳤지만, 덕분에 소주 6병과 함께 깊어가는 우정만은 확실하게 챙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