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준은 대기업 화장실 칸막이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8,000만 원이라는 연봉은 그를 송파 투룸 전세 2억짜리 집에 살게 해주었지만, 그 대가는 회의실에서 "팀장님 말씀만 들어"라는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숙이는 '부품'이 되는 것이었다.
민준은 팀장이 시킨 무의미한 데이터 정리 작업 대신, 몰래 단톡방을 켰다.
민준: 야, 나 오늘 팀장한테 '자아 삭제' 당했다. 오늘 스터디 테마는 계좌 관리가 아니라 내 멘탈 복구다. 소주 준비해라.
재혁은 아버지의 '폐유 재생' 공장에서 드럼통 사이에 서 있었다. 3화에서 120만 원을 주고 산 '젠슨 황 스타일' 가죽 재킷을 입고 폼을 잡고 있었지만, 현실은 가혹했다.
"야! 박재혁! 너 그 딴 옷 입고 뭐 해? 기름 튀면 어쩔 거야! 당장 작업복으로 갈아입어!"
아버지의 호령에 재혁은 투덜거렸다.
"아버지, 이게 그냥 옷입니까? 엔비디아의 영혼이 담긴 옷이라고요!"
결정사 매니저에게 '인상이 폐유 업자 같다'는 소리를 들었던 재혁은, 기름때 묻은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며 '나는 후계자가 아니라 유급 죄수다'라고 일기장에 적었다.
지훈은 공유 오피스에서 '불가능은 겁쟁이들의 환상이다'라는 스티커가 붙은 텀블러를 만지작거렸다. 창업 5년 차, 그는 대표이사였지만 직원의 월급을 챙겨주고 나면 본인 손에 쥐는 돈은 개발자보다 적었다.
점심으로 컵라면을 먹으며 지훈은 단톡방에 답장을 남겼다.
지훈: 야, 나 오늘 노트북 들고 간다. 미국 주식 실전 매수법 강의해 줄게. 물론 난 5년째 적자라 1주도 못 사지만, 이론은 워런 버핏급이다.
토요일 오후 2시, 세 남자는 어김없이 역삼역 스타벅스 2층 창가 자리에 모였다. 노트북과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책을 펼쳐놓았지만, 스터디는 시작 5분 만에 산으로 갔다.
"지훈아, 아까 단톡방에서 말한 미국 주식 실전 매수법 좀 알려줘 봐." 민준이 물었다.
"어, 그게 말이지... 일단 배당주 위주로 사서 복리의 마법을 부려야 하는데..." 지훈이 진지하게 설명하려던 찰나, 재혁이 끼어들었다.
"야, 복리고 뭐고 나 아까 결정사 매니저한테 또 까였어. 사진이랑 실물이 다르다는데, 가죽 재킷 입고 찍은 사진이 문제인가?"
그 순간부터 스터디는 '재혁의 소개팅 사진 보정법'과 '민준의 팀장 뒷담화'로 변질되었다. 경제 지표를 분석해야 할 엑셀 파일에는 어느새 팀장의 얄미운 언행들이 연대기별로 정리되고 있었다.
"야, 공부 5분 했으면 많이 했다. 뇌가 과부하 걸려서 안 되겠어."
민준의 말에 지훈과 재혁이 약속이라도 한 듯 짐을 쌌다.
"가자, 역삼역에서 제일 가성비 좋은 무한리필 고깃집으로. 오늘은 '부품'이랑 '죄수'랑 '거지 대표'가 회식하는 날이다!"
세 남자는 스타벅스를 나와 당당하게 고깃집으로 향했다. 부자는 못 됐지만, 서로의 비참한 현실을 안주 삼아 웃을 수 있는 친구는 확실히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