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 Day 28 Portomarin
이제까지의 순례길 중 가장 이른 시간에 출발한 하루였다. 해가 뜨기 전 걷는 길은 언제나 조금은 무섭고 겁이 나지만, 순례객이 많아지는 100Km 지점부터 숙소 대란이 일어난다는 말에 잠도 잃고, 겁도 잃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다 만난 푯말에 '생장에서부터 667KM, 산티아고까지 114KM' 지금의 위치가 적혀있었다. 일주일 남짓 남은 앞으로의 여정에 벌써부터 뿌듯함이 몰려오는 아침이었다.
정말 100km가 남았다. 이런 거리 단위는 내 생에서 체감될 일이 없는 존재였다. 여전히 그 숫자는 나에게 너무 커서 가늠하기 힘들지만, 780km 중 100km가 남았다는 그 순간은 내가 보내온 시간들이 결코 짧지 않았다는, 그리고 그 길 끝에 정말 거의 다 와간다는 그 대략의 확신을 전해주었다.
밍밍한 커피에는 여전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을 기점으로 함께 걷게 된 새로운 사람들의 분위기에도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 순례길 인증이 가능한 최소 거리에 맞추어 길을 시작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꽤 가벼워 보였다. 깨끗한 신발과 가방, 하얀 종아리가 그들을 알아보게 했다. 순례자들 간의 밝은 인사도 함께 줄어들어 괜스레 서운한 감정이 이어졌다.
새벽에 일찍 길을 나선 만큼, 오늘의 목적지인 포트로마린에 12시쯤 되어 다다를 수 있었다. 선착순 공립 알베르게에 부디 무사히 체크인할 수 있기를 바라며, 눈앞의 저 사람들만 앞질러 보자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아주 놀랍게도 80여 석의 선착순 알베르게에 도착한 순례객 중 1, 2, 3등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걱정한 것이 무색하게도 아주 안정적으로 체크인에 성공한 나는 침대에 자리를 펴고 발을 살폈다. 며칠 전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던 물집이 드디어 발가락 윗부분 전체로 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 몸의 참 작은 일부인 새끼발가락, 그 존재를 이럴 때는 참 크게 느낀다.
슈퍼에서 간단히 음식을 사 와 허기를 달랜 후, 다시 침대 위에 누웠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나 평화로워 사진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
낮잠을 자고 6시쯤 되었을까, 아까 마을 초입에서 본 추로스 가게에 들리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왔다. 안타깝게도 추로스 가게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기에 대성당을 앞에 두고 줄 지어 있는 바 한 곳에 들어갔다. 맥주를 시켜놓고는 어떤 메뉴를 먹볼까 고민하던 찰나,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2주 전쯤이었을까, 알베르게에서 빨래를 하다가 만난 프랑스 사람이었다. 빨래터에서 잠시동안 스몰톡을 나눴을 뿐이었지만, 그는 대화를 참 즐기는 듯했고 그 이후에도 동네 슈퍼에서 여러 번 마주쳤다. 그렇게 같은 길을 걸으며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 만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저녁을 먹기 전 간단하게 동네를 둘러보는 듯했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함께 앉아 맥주를 마시게 되었다. 프랑스 파리 근교 도시에서 온 그는 독일에서부터 두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카미노를 걸어왔다고 했다. 턱수염이 가득한 지금의 그와 달리 시작 지점에서 그의 사진은 깔끔하게 면도한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리아에서부터 확연히 달라진 순례길의 분위기에 서운함을 토로하다가, 산티아고가 머지않았음에 함께 신기해했다.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각자 이 길을 걷게 된 이유 혹은 이 길 이후의 삶에 대한 것들이었다. 그는 프랑스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가족들을 만나기 전 일주일 정도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동안의 여정이 어떠했는지 쏟아지는 질문을 받는 것은 자신에게 너무 부담스럽다는 것을 이미 안다고 말이다. 꽤나 현명하고 유연한 복귀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그는 캐나다로 이민을 갈 예정이라고 했다. 영상제작자로 오랫동안 일하며 항상 스크린 뒤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답답함을 느꼈고,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출발을 하며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나눴던 짧은 대화들 속에서도 그의 그런 외향적 성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에 그가 보냈을 시간들과 그 결정에 큰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이제 내 이야기를 할 차례였다. 나는 그저 내가 정말 사랑하고 즐겼지만 그만큼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던 나의 일을 곱씹어보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고 했다. 정확히는 ‘직업을 바꾸고 싶어서’라고 했지만 어찌 됐든 아직 한국으로 돌아가서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싶은 지에 대해 정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했다. 나의 그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카미노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아요. 하지만 그 결정을 할 수 있을 용기를 주는 거죠”. 그가 맞다. 나는 정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곳에 왔지만, 한 달이 넘게 걷는 이 길 속에서 누군가 나에게 정답을 ‘하사’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용감해지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어떤 일이든, 내 선택을 믿고 행복하게 살아나갈 용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