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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아나할미 Sep 22. 2024

Thank you so much 말고 더한 것이 필요해

순례길 Day 29 Gonzar

 작은 물집은 커다란 존재감을 드러냈다. 발가락 중에서도 가장 작은 새끼발가락의 절반이 물집으로 덮이자, 딱 맞는 등산화로 걷는 발걸음은 불안불안해졌다. 숙소를 미리 예약해두지 않는 여행의 묘미는 여기에 있다. 발이 아프면 그저 조금만 걸으면 되는 것! 애매한 위치의 작은 마을에 근사한 알베르게가 있었다. 든든한 마음으로 느지막이 일어나 오늘의 가벼운 여정을 준비했다.

 1층 식사공간에서 어제 간단히 사둔 아침을 먹고 있었다. 순례길 첫날 저녁부터 함께 걸어온 영국인 모녀도 채비를 마치고 내려왔다. 어제부터 나의 물집 소식을 그녀들에게 전해두었고, 나도 모녀 중 어머님의 발 붓기 소식을 알고 있던 터라 각자 가진 부상에 대한 안부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어머님이 자신의 가방에서 물집방지스틱과 물집전용 밴드를 꺼내어 내게 내미셨다. 자신은 순례길 내내 물집이 잡히지 않아서 앞으로 크게 쓰일 일이 없을 것 같다고 덧붙여주신 그 이유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한 달이 가까운 길을 함께 걸어온 이가 건네는 무언가는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나 따뜻했다.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이라 연신 가방을 뒤적거려도, 아니 그냥 딱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만 해도 내 가방에는 그녀에게 나눌 것이 없었다. 가지고 있던 소독약도 절반을 버리며 짐을 줄인 덕에 내 가방은 이미 무소유 그 이상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뒤섞인 애정으로 그저 "Thank you so much"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알베르게에서 순례자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건물을 나섰다. 한두 시간 남짓 거리의 작은 마을에 12시까지만 도착하면 되는 일정이었기에 마저 길을 나서지 않고 근처 카페를 찾았다. 대성당 바로 앞 테라스 자리에 앉아 발가락에 붙인 밴드를 고쳐 붙이고 여유롭게 커피의 따뜻함을 즐겨보았다. 얼죽테(라스)를 추구하던 열정도 9월이 들어서자 시들해졌는지 금방 몸이 차가워져 자리를 안으로 옮겼다. 순례자들은 모두 길을 떠나고, 동네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는 아침의 일상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그 속에서 조용히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어 글을 쓰며 시간을 보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 조금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느지막이 걷기 시작해서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새끼발가락이 다시 말썽이었다.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고 다시 길을 걸었다. 발이 아프면 적게 걸으면 되지, 그래도 안되면 슬리퍼라도 신고 걸으면 되지! 계속 걷는 그 순간이 마음에 들었다.

오늘의 숙소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알베르게가 아닌 '카사'였기에 분위기가 조금 달랐달까. 낡고 작은 동네에 유난히 혼자 반짝이는 새 건물이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순례길에서는 거의 경험하기 힘든 것이었기에 '우와'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반가운 감각이었다. 향기롭고 뽀송한 그 느낌이 낯설면서도 포근했다.

생각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숙소만큼, 저녁식사도 기대보다 훨씬 근사했다. 각 잡힌 테이블 세팅과 갓 오픈한 와인, 빵과 올리브유는 마치 도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스타터로 초리조, 살치존, 하몽, 치즈 그리고 스파게티가 나왔고 메인으로는 닭고기와 소고기가 함께 나왔다. 양도 많고 맛도 있는 완벽한 식사였다.

오늘의 저녁식사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던 독일 소녀와 함께했다. 그녀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입학하기 전에 주어진 한두 달을 보내고 있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녀와 나눈 많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생각보다 비슷한 독일과 한국의 사회 문화에 놀랐고, 그녀가 던진 한국의 이웃 국가는 어디냐는 질문에 한번 더 놀랐다. 그 질문에 놀란 것은 아마 내가 정말 운이 좋게도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질문에 나는 너무 당연해서 설명하기 낯선 것들을 나름의 차분함을 동원하여 소개했다. 그리고 그 말 끝에 나의 부모님 세대 사람들에게는 이런 질문이 낯선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들이 이어졌다. 한 때 유행했던 외국인 예능은 우리 집 60년대생들의 최애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식을 맛보며 좋아하는 장면, 한국말이 유창한 외국인들이 한국사람도 어려워하는 퀴즈를 맞히는 장면 같은 것들에 그들은 참 흥미로워했다. 그리고 나는 그 옆에서 괜스레 그런 것들을 못마땅해했다. 그런 것들을 재미있어하고 신기해하는 것에 괜한 자존심이 상해서였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거실 한켠에 앉아 뾰로통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았던 내가, 유독 그 예능을 재미있어하던 그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낯선 질문으로 다른 세대의 시선을 다시 보게 해 주다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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