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일에만 온 화를 쏟을 수 있길
아빠와 나는 여행 중 서로를 돌본다.
어느 때는 30살 딸이 5살 아이처럼 춥다고 60살 아빠 옷을 빼앗아 입고
어느 때는 환갑인 아부지가 7살 아들이 된다.
이탈리아 남부. 역시 빵이 유명하다. 길 가다가 슈가파우더가 잔뜩 뿌려진 빵을 와구와구 먹었을 뿐인데. 아빠 배 위에는 어느새 하얀 설탕 가루가 소복이 뿌려져 있다. 슈가파우더가 뿌려진 면이 위쪽으로 오게 먹어야 하는데. 아무 생각이 없던 아빠는 유치원생처럼 배에 설탕을 묻히고 다녔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았더라면 잊어버렸을 거야. 하필 비 오는 날이라서 설탕은 잘 털어지지도 않았다. 나도 어렸을 때는 많은 걸 옷에 흘렸겠지.
어릴 적 무언가를 흘린 기억이 많다. 책상에 물도 쏟고, 옷에 국도 흘리고. 문득 생각해 보면 한 번도 "왜 이렇게 칠칠하지 못하니."라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다. 하얀 가루를 옷에 다 흘렸을 때도 둘 다 깔깔거리면서 웃었던 걸 보면 이 영향도 크다.
살면서 물을 쏟을 수도 있고, 옷에 음식을 묻힐 수도 있다. 이럴 때마다 분개하면 서로 피곤해져서 여행이란 못했겠지.
추웠다가 더웠다가 비 왔다가 해 떴다가. 이탈리아 사람들 성격처럼 변화무쌍했던 남부 날씨. 춥다고 바지 위에 아빠 운동복을 껴입는다.
이 길목에서 나는 그토록 사소한 것에 분개했다.
"저!! 기!! 가서 벗어줘도 된다고!!"
춥다는 딸에게 입고 있는 바지를 바로 벗어주겠다고 갑자기 길가에서 바지를 훌렁 벗겠다는 아빠. 골목 구석진 곳에서 벗어주라고 딸내미는 화를 내고 있다. 사실 바지를 2개 입어서 별로 이상할 것도 없었다. 왜 그렇게까지 화를 내야 했는지 모르겠다.
바로 옷을 받아 들고는 또 사진처럼 기뻐할 거면서. 왜인지 모르겠지만 아빠의 운동복 바지와 잘 맞던 내 바람막이.
어쩌면 큰 일에 화를 못 내고 있어서, 소중한 옆 사람들에게 작은 일에 이렇게 조그맣게 분노하고 있나. 난민, 장애인, 환경, 인권, 동물권... 다 쓸 수도 없이 큰 일들에 있어서는 한없이 무뎌지기만 한다. 누구에게 어떻게 분개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서.
작은 일은 화기애애하게 넘어가고 더 중요한 일에 크게 분노하길* 바라본다.
*박완서 님의 책 제목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분노는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 책, 스테판 에셀 [분노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