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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08.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4/100

다이어트

또 종일 먹은 것들을 다 토해냈다.


아침 9시.

엄마가 출근을 하고 나면 집엔 나 혼자 남는다. 학교를 휴학한 나는 저녁 7시 동생이 돌아오기 전까지는 집에서 혼자 있을 수 있다. 엄마가 나가고 나면 냉장고부터 열어본다. 어제저녁으로 먹고 남겨둔 불고기, 며칠 전 생일이었던 동생을 위한 케이크, 냉장고에는 아빠가 사 온 아이스크림도 있다. 냉장고를 닫고 일단 텅 비어있는 밥솥에 밥부터 올려놓는다.


집 앞 편의점은 몇 달 전부터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있다. 큰 편의점이라 요즘 유명한 것들은 다 팔고 있다. 바구니 하나를 집어 먹고 싶은 것들을 이것저것 담기 시작한다. 라면, 감자 칩, 초콜릿 쿠키, 롤케이크, 햄버거, 도시락 2개, 아이스크림 한 통, 핫바, 콜라, 바나나우유. 그렇게 바구니가 꽉 차서 더는 담을 공간이 없어지니 괜히 우울해졌다. 7만 5,400원. 먹고 싶은 것을 한껏 사면서도 우울한 기분은 나아지지 않는다.


집에 오니 밥은 보온으로 되어있었다. 당장 사 온 라면 5 봉지에 맞는 물부터 끓였다. 냉장고에서 어제 먹다 남은 불고기 중 1인분만 꺼내서 프라이팬에 다시 볶는다. 라면 5개가 다 익자마자 불고기와 함께 라면을 먹는다. 라면은 이제 5개는 먹어도 먹은 거 같지도 않다. 남은 라면 국물에 지금 막 밥솥에서 한 밥을 밥솥째 꺼내 몇 주걱 퍼서 말아먹는다. 다음으로는 편의점에서 사 온 도시락, 핫바를 남은 밥과 먹을 생각이다.


오후 1시.

편의점에서 사 온 봉지에 남은 것은 바나나우유 한 통. 그것을 보니 이제 더 먹을 생각이 싹 사라졌다. 바나나우유 한 통을 원샷하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제는 어렵게 노력하지 않아도 토할 수 있게 되었다. 토하는 게 쉬운 건 아니지만, 이제는 10분이면 뒷정리까지 다 하고 나올 수 있다.


시체처럼 누렇게 뜬 얼굴로 집을 정리한다. 지금까지 먹었던 음식들의 흔적을 쓰레기봉투에 넣고, 설거지를 한다. 쓰레기봉투는 설거지가 끝나는 대로 내다 버린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종일 먹었지만, 기운이 없다. 방으로 들어와 체중계에 올라간다. 42.1kg. 어제와 소수점 하나까지도 똑같다.


대학에 입학하고, 통통하던 나는 살이 조금 빠졌다. 살이 좀 빠지고 나니  대학가더니 예뻐졌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예뻐졌네! 예뻐졌네 하는 말이 빈말인 줄 알지만 듣기 좋았다. 살을 더 빼야겠다고 생각했다. 살을 10kg 가까이 빼자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 일색이었다. 대학가더니 너무 예뻐지네.


나는 그렇게 칭찬에 중독되었다. 남들이 해주는 좋은 말이 좋았고, 그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았다. 뭐 하나 자랑할만한 것 없는 내 인생에 처음 듣는 칭찬의 그 아름다운 말이 좋았다. 한번 칭찬을 듣고 나니 칭찬 없이 살 자신이 없어졌다. 사람들을 만나면 칭찬을 기대하고, 내가 살이 빠지면 빠질수록 사람들은 더 많이 그것에 대해 말해줬다. ‘아유 팔이 한 줌이네~ 이러다가 부러지겠어.~’


살은 20kg 넘게 빠졌다. 언제부턴가 먹고 싶은 음식을 계속 참으면 사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어 음식을 먹고 나면 먹은 내 모습이 싫어서 토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다행히 몸무게는 점점 줄어들어 이제는 누가 봐도 나는 모태 마름의 몸을 가졌다. 두 달 전부터는 가족들도 집안에 음식이 너무 빨리 없어지는 것을 이상해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엄마는 점점 살이 빠지고 생기가 없는 내 얼굴도 걱정했다. 그리고 어쨌든 편의점에 매일 갈 수밖에 없었다. 집에는 내가 먹고 싶은 것들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니까.


오후 3시.

나른한 오후지만 몸은 천근만근 저녁 10시의 피곤함이 몰려온다. 침대에 들어가 몸을 눕힌다. 한여름에도 손발이 얼음처럼 차갑다. 4시간쯤 자고 나면 동생이 집에 올 것이다. 그리고 한 시간쯤 뒤쯤 퇴근한 엄마는 집에 와서 저녁밥을 차리겠지. 아마 오늘도 나는 미리 배가 부르다며 저녁을 먹지 않을 생각이다. 내일은 41kg대의 몸무게를 볼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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