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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07.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3/100

수유리 대추나무 집

춥고 낡은 기억의 수유리 집. 나는 그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살았다.

방 4개짜리의 주택이었다. 마당에는 내 나이와 똑같은 대추나무가 있었고, 대문 위로 연결된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 올라가면 옆집으로 넘어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는데, 종종 열쇠를 안 가지고 나올 때면 옆집 벨을 눌러 그 계단을 넘어 집으로 들어오곤 했다.

마당 딸린 주택에 살았었다고 하면 무슨 기생충에 나오는 그런 집을 상상할지 모르겠으나 수유리의 집은 낡고 작았다.


거실 한쪽 면은 큰 창으로 되어있었는데, 오래된 나무 창문 사이로 겨울에는 바람이 들어왔다. 바람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컸던 그 강풍 덕분에 겨울이 되면 집안에서도 코트를 입고 생활했던 집이었다. 저녁에 잠들기 전에 화장실 물을 살짝 틀어놓고 자지 않으면 다음날 꽝꽝 얼어 물을 사용할 수 없었다. 입김이 나는 화장실에 들어가 밤새 쫄쫄 받아진 세숫대야의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욕조에 매일 몇 마리씩 둥둥 떠 있던 귀뚜라미를 잡는 일이 일과인 집이었다.


한여름은 비가 많이 왔다. 수유리의 집은 처음 방문한 사람은 숨은 헐떡거릴 정도로 오르막길을 지나야 했기에 다행히 비가 많이 와도 걱정은 없었다. 물론 지하실은 다른 이야기였고.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모아둔 지하실을 나는 싫어했다. 그런데도 가끔 지하실로 내려가면 쾌쾌한 지하실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먼지가 많이 쌓여있는 지하실에는 항상 물건들이 꽉 차 있었는데, 도대체 무엇이 있었는지 지금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나 기억나는 건 보일러라고 알고 있는 큰 철통이 있었는데,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 되면 그 보일러를 지키기 위해 시간마다 내려가서 물을 펐던 기억이 있다. 1시간마다 지하실에 내려가면 발목까지 찰랑찰랑 차 있는 물이 보일러를 망치기 전에 물통이며 쓰레받기로 열심히 물을 퍼냈다. 지금 생각하면 먼지 쌓인 지하실의 그 물이 더러울 만도 한데, 어린 시절 물 좋아했던 나는 그 물도 물이라고 발목까지 차 있는 물을 밟으며 들어가는 지하실이 재밌었다.


마당의 대추나무는 내가 태어난 걸 기념하기 위에 심었다고 했다.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그 이야기 덕에 나는 나와 동갑인 대추나무와 자랐다. 매년 대추 철엔 지붕에 올라가 나무에서 대추를 땄는데, 언젠가부터 더는 대추가 열리지 않았다. 병들었다 바람났다 하며 이제 대추가 열리지 않는 대추나무였지만 나와 동갑인 그 나무를 나는 좋아했다. 아마도 스토리 있는 나무라 그 이야기를 더 좋아했던 거 같다. ‘내가 태어나서 기념하기 위해 심은 나무래!!’

그런 대추나무는 우리 가족이 그 집을 떠나기 바로 전에는 단 한 개의 대추도 열리지 않는 잎만 많은 그냥 나무가 되었다.


추억이 많은 집이지만, 결혼해서 바로 그 집에 들어와 시어머니 시동생들과 살았던 엄마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놀랍다. 부엌이 완전히 분리된 그 집의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며 엄마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아마 지금의 나였다면, 가출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에야 추억이다 뭐다 아름답게 말이 많았지만 나도 추워서 코트를 입고 잠들고, 아침에 얼어붙은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아파트의 삶을 매일매일 꿈꿨다. 그래서 새집으로 이사하는 날 그 집을 떠나는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새 아파트는 넓고 따뜻하고 깨끗했으니까.


얼마 전 그 집이 꿈에 나왔다.

작은 마당이었는데 그 마당 계단에 앉아서 놀고 있는 꿈을 꿨다. 예전에 내가 살았을 때보다 깨끗한 집이었다. 꿈에서 보니 지금 내가 꿈꾸는 그런 작은 마당 있는 주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파트에서 20년 넘게 살다 보니 주택이 그립나 보다. 손이 많이 간다, 불편하다 이런저런 말을 많이 들어도 아주 작은 마당이라도 있는 주택에서 살고 싶어 진 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다스려보고자 수유리 올드하우스를 소환했다.


시간마다 물 펐던 지하실을.

날마다 건져냈던 귀뚜라미를.

가을이 되면 잎으로 뒤덮인 마당을 청소하던 일을 생각해.


그런데 아무리 생각을 다시 해봐도, 나는 지금 주택 병에 걸렸다. 주택에 살고 싶은 병.

생각해보면 저 모든 귀찮은 일은 엄마 아빠가 했지 내가 한 게 아니니까.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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