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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09.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5/100

첫 여행

프라하에 도착하니 내 캐리어가 없어졌다.


파리를 거쳐서 오는 항공기는 기어이 내 짐을 파리에 남겨두고 오고 말았다. 1시간의 짧은 레이오버가 걱정되었지만 무리하게 항공편을 예약한 나의 잘못 아니겠는가. 수화물은 내일 도착한다고 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여행지에서 빈손으로 공항을 떠나는 그런 불안한 경험을 해야 했다.


J와 나는 프라하에서 만나기로 했다. 각자 다른 나라에서 출발하여 도착해야 했기에 도착 시각까지 완벽하게 맞출 수는 없었다. 나는 하루 먼저 도착하고 J는 바로 다음 날 도착하는 일정이었다. 1년 만에 만나는 통에 나는 한껏 신이나 있었다. 그래도 하루 먼저 도착한 덕에 샤워라도하고 깨끗하게 만날 수 있었다.


지금 공항에 가고 있다는 J의 카톡을 받고 나는 백팩 하나만 매고 공항을 나서는 나의 상황을 설명했다. ‘짐이 내일 도착한대..’ 깨끗한 모습으로 맞이하긴 개뿔 그것도 글렀네.


숙소는 J가 예약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조용한 곳에 있던 호텔은 작았지만 프라하다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마트에 가서 쇼핑을 시작했다. 치약, 칫솔, 속옷, 옷가지들 그리고 항공사에서 보상을 해준다는 말에 체코에 오면 꼭 사야 한다는 조금은 비싼 샴푸, 린스, 바다 샤워를 사 들고 숙소로 돌아왔다.


아직 이른 오전이라 시간은 많았다. 나는 3박 4일 프라하에 머물 예정으로 느긋하게 시티투어를 한 뒤 숙소에서 일찍 잠이 들었다. J는 아직 비행기를 타기 전이었고, 잘 자라며 내일 보자는 말을 했다. 내일이면 드디어 이 생소한 도시에 익숙한 것이 하나 생긴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부터 보았다. J가 도착했다는 문자 대신 장문의 카톡을 보내 놨다. 이유인즉슨 자기가 공항을 잘못 알아서, 다른 공항으로 비행기를 타러 왔다고 했다. 그걸 공항에 도착해서야 알아서 비행기표를 바꾸고 다시 다른 공항으로 가고 있다고. 하루 더 늦어질 것 같다며 미안하단 문자를 보며 '여권을 놓고 갔다'도 아닌 '공항을 잘못 갔다'는 시트콤에서도 쓰지 않는 내용일 것이라 생각했다. 공항을 잘못 갔다니, 이게 무슨 말이야 방구야..


후예들은 사연은 이해할만했다. 예약 표에 헷갈리게 공지를 해놓은 항공사를 욕할 만큼. 아무튼, 나는 하루 더 나 홀로 여행 시간이 생겼고, 내 짐은 그날 오후에 도착했다. 1년 만에 냄새나고 더러운 옷으로 J를 맞이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깨끗한 옷을 꺼내 입을 수 있게 되어 되려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J는 그렇게 다음날 오전 11시쯤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하기 전까지 그는 자기 몰골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호텔 문 두드리는 소리에 문을 열었더니, 수염이 거칠하고 새까맣게 탄 J가 분홍 카네이션을 하나 들고 서 있었다. 그의 울 것 같은 표정과 카네이션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그 와중에 카네이션은 어디서 샀는지 평생 살면서 그렇게 예쁜 색깔의 카네이션은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1년 만에 우리는 프라하에서 만났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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