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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Aug 12.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8/100

E의 연애 #1

E는 본인의 남자친구와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우리가 벌써 이만큼이나 친해졌다는 생각에 놀랍기도 했다.


E는 같은 대학 같은 전공 수업에서 내가 사귄 첫 친구였다. 나이는 나보다 두 살 어렸는데 공부는 나보다 두 배쯤 잘했다. 교수가 꿈이라는 E는 고등학교 때까지 바이올린을 했었는데, 대학에 들어와 화학공학으로 전공을 선택했다고 했다. 화학, 수학이 재밌다나? 좋겠다 똑똑해서.


노트필기 하나는 정말 기가 차게 하는 E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항상 같은 펜을 사서 깔끔하게 노트 정리를 하는 E의 노트는 전공 책 보다 나았다. 한 번도 A를 놓쳐본 적이 없는 E 덕분에 나도 A를 받은 수업이 많으니 지금이라도 감사의 말을 전한다. 네가 없으면 아마 졸업은 할 수 없었을 거야.


20대 초반의 우리는 시험공부를 핑계로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25살 나의 제일 친한 친구였다. 20대답게 연애, 패션, 뷰티 가릴 것 없이 이것저것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역시나 연애는 그중 가장 핫한 주제였다.


그 당시 E는 남자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학교 바로 앞의 작은 아파트에서 둘이 살고 있었는데 집으로 초대를 했다. 함께한 시간이 2년쯤 되었으니 이제는 서로의 집을 왔다 갔다 해도 이상할 것 없었다. E의 집에 방문하기로 한 날이 되자 E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기 남자친구는 나이가 많다고.


E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고 또래의 사람을 만나는 걸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아이였다. 당연히 나이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말이 놀랍지는 않았다. 나는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사랑에 나이가 문제인가? 15살 차이 나는 사람들도 결혼하고 잘 사는데. 나는 그 정도도 이해 못할 정도의 좀생이는 아니야.


E의 집은 그 성격만큼이나 깔끔했다. 커피를 마시며 아직 퇴근하지 않은 남자 친구를 기다렸다. 30분쯤 후 열쇠 소리가 들리고 E의 남자 친구가 집에 왔다. 아직도 그때의 내가 무슨 표정이었을까 궁금하다. 표정 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놀란 마음이 표정에 드러났을 수도 있다. 백발을 하고 나타나 악수를 하는 E의 남자친구는 그 당시 62살이었다.


그 뒤로는 종종 함께 만나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했다. 그는 다정하고, 똑똑했다. E와 잘 맞았고 아직 어리지만 어른스러운  E는 그의 앞에선 조금은 철부지 같은 여자친구가 되었다. 둘은 졸업 때까지 같이 살았고, 그 뒤로도 한동안 만났다고 알고 있다. 사랑에 나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40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건 E를 통해서 배웠다. 생각해보니 나는 E에게 배운 것들이 너무 많다. 연애도, 사랑도, 열역학도. 아마 조금이나마 있었던 편견은 그 두 사람과 시간을 함께할수록 사라졌다. 역시 사랑은 나이도 국경도 뛰어넘지.


E와는 이제 연락하고 살지 않는다. 한때의 내 절친은 아마도 어디선가 똑 부러지게 살고 있겠지. 그때의 그 남자친구를 만나는지 안 만나는지 조금 궁금하지만, 평생 물어볼 순 없을 거 같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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