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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01.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26/100

삼겹살

우린 외식으로 삼겹살을 먹으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어.


그럼 대체 뭘 먹으러 가냐고 되묻는 놀란 눈이 나는 더 놀라웠다.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육고기 자체를 많이 먹지 않는 집이었지만 삼겹살은 거의 금기 식품 이었다. 먹고 난 후 뒤처리는 어쩔 거야. 당연하게 다른 집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부엌일을 하는 모든 사람이라면 이해할 삼겹살을 집에서 구으면 생기는 일은 그야말로 내 기준으로 처참하다.


할머니와 함께 살 때는 돼지고기 자체를 먹지 않았다. 할머니는 돼지고기 알레르기가 있어서 돼지고기는 입에 대지도 않는 분이셨으니까. 아빠는 고기라면 소 등심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엄마와 나는 고기 자체를 즐겨 먹지 않았다. 한 번도 삼겹살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동생을 보면 집에서 삼겹살을 구울 이유는 더더욱 없었다. 외식도 마찬가지였다. 일식집, 한식집, 나물 집, 이탈리안 레스토랑 이곳저곳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삼겹살집에 간 적은 없다.


그런 내가 세상 모든 음식 중에 삼겹살을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 같은 지붕 아래 살 게 되었다. 집에 쌀은 떨어져도 삼겹살이 떨어진 적이 없다는 이 사람은 집에서 삼겹살 굽는 것에 학을 떼는 나를 이해할 수 없어 했다. (본인이 집에서 삼겹살 먹고 청소를 안 해봐서 그러겠지) 가족외식으로 삼겹살을 자주 먹었다는 그는 대한민국 남자라면 삼겹살을 싫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치면서 되려 우리 집 남자들을 걱정했다. 불쌍하네, 삼겹살을 분명 엄청 먹고 싶었을 꺼야.


가족이 다 모인 날 동생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너는 삼겹살을 좋아하냐고, 삼겹살 먹고 싶냐고. 당연하다는 표정의 동생은 우리 집 사람들은 삼겹살을 싫어하니까 한 번도 먹으러 가자는 말을 안 했다며 웃었다. 불쌍하게 큰 거 맞네! 내 동생. 친구들을 만나면 보통 삼겹살을 먹으러 가니까 괜찮다고 했지만, 그 말을 들은 엄마도 나만큼 충격을 받은 듯했다. 삼겹살을 좋아했다고?


한 가지 확실한 건 식습관은 정말 집안의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삼겹살을 1년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했던 나의 삶은 삼겹살이라면 삼시 세끼 먹을 수 있다는 사람과 함께 살면서 일주일에 두 세 번으로 늘어났다. 이런 사람을 데리고 엄마 집에 놀러 가면 아빠 엄마는 고기 좋아하는 사위의 취향을 한껏 맞춰 고기 상을 차린다. 한번은 삼겹살집에서 외식을 한 적도 있으니 정말 놀라운 일이다.


덕분에 내 동생은 신났다. 대한민국의 남자라면 삼겹살 싫어하기가 쉽지 않다는 두 남자의 주장에 맞게 삼겹살을 먹으러 가서 신나게 움직이던 동생의 젓가락이 아직도 기억난다. 맛있지 맛있어하며 삼겹살을 먹던 동생은 오늘 현재 담낭에 돌이 생겨 입원 중이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어서 생기는 병이라던데, 집에선 못 먹는 삼겹살을 밖에서 많이 먹었나 싶어 갑자기 짠해진다.




매일 쓰기를 실천해 보려고 합니다.

100일 동안 매일 그냥 시시콜콜한 아무 이야기나 써봅니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즘,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리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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