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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이나모 Sep 04. 2020

그냥 시시콜콜한 이야기 #28/100

사내커플 웨밍아웃하다

'프로젝트에서 제이 네 이름이 나왔어. 절대 이 프로젝트하기 싫다고 해.'


곧 한 지붕 아래서 살 게 될 사람과 같은 프로젝트에서 일하다니. 게다가 우리가 사귄다는 이야기는 회사 내 사람들은 모르는 일이다. 먼저 투입된 프로젝트에서 추가 인력 리스트를 만드는 중 보이는 이름에 속으로 학을 뗐다. 안돼. 절대 오면 안 된다. 아니 회사에 프로젝트가 수백 개인데 왜 하필 이걸로 넣으려는 거야.


프로젝트 막내가 무슨 힘이 있겠는가. 결국 제이는 프로젝트로 파견되었다. 자리는 바로 내 뒷자리. 우리가 친한 동기인 줄만 아는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 뒤통수를 맞대고 일을 해야 했다. 아 영 불편한데 정말. 프로젝트를 같이하는 팀원은 6명. 좋은 리더와 좋은 팀원들과 함께 일해서 좋았다. 그리고 너무 좋아서 일을 하면서도 조금은 미안했다. 어쨌든 1년 넘게 함께 프로젝트를 하며 사람들에게 거짓말을 해야 했으니까.


우린 사내커플의 달달함 따위는 없었다.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몰래 만나 손을 잡는다든지, 야릇한 눈빛을 주고받는 사내커플의 모습을 보면 우린 같이 냉소를 날렸다. 일은 하지 않고 회사에 연애를 하러 가나. 우리의 사내연애는 그렇지 않았다. 같이 일을 하게 되니 사적인 연락은 더 없었다. 회사에선 같이 있고 퇴근을 하면 결혼 준비를 하는 일상이었기에 따로 연락을 할 일은 없었다. 뒤돌면 있는 제이였기에 더더욱 회사에선 정말 필요한 말만 하였다.


나는 10월의 결혼은 미리 말하긴 했었다. 나이도 있었고 언제까지 거짓말로 남자친구가 없다느니, 결혼 생각 없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연애 이야기를 할 때면 상대가 나와 같이 일하고 있는 제이라는 것 빼고는 거짓말은 없었다. 결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을 때쯤 이제는 말씀드려야 했다. 결혼하고 프로젝트에서 두 명이나 갑자기 빠지게 된다면 미리 알고 계셔야 하니까. 청첩장을 드릴 생각으로 점심 약속을 잡으면서부터 떨렸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떨릴 일인가. 내가 결혼 좀 하겠다는데...


‘저 근데 사실 사내연애였어요’


밥숟가락이 멈추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누구냐고 닦달하는 말에 지긋이 제이를 쳐다봤다. 우리가 사내연애를 한다고 하면 회사 외부의 사람들은 종종 말했었다. 너네 빼고 회사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사실 결혼 날짜가 잡힐 때 씀에는 우리도 차라리 그러길 바랐었다. 그냥 다들 눈치채고 그래 알고 있었다고 이제야 말하냐며 우리가 민망해지는 쪽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날 점심은 음식이 많이 남았던 걸로 기억한다. 웨밍아웃에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고, 사람들은 한 대 맞은듯한 표정으로 우릴 쳐다봤다. 결혼까지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어서 숨겼던 사실이었는데, 그게 이렇게 5년이나 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우리가 그동안 참 잘 숨겼네, 모름지기 사내 비밀연애는 우리처럼 해야 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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