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로 쓰는 글들> '모페'가 바꾼 아침의 이야기.
처음엔 그저,
버거운 하루 끝에 겨우 붙잡는 숨구멍이었고
아무도 몰래 속삭이던 내 마음의 기록이었다.
글쓰기가 그랬다.
위로였고, 쉼이었고,
나를 붙드는 유일한 끈 같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글쓰기가 삶을 설계하는 도면이 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나는,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시간을 확인하고
자연스럽게 펜을 든다.
나는 나의 아침 글쓰기,
'모닝페이지'를 '모페'라 부른다.
"모페 안녕?
오늘도 눈 뜨고 아침을 맞이할 수 있어 고마워.
오늘도 나의 하루가 기대돼.
너를 매일 아침 만나는 게 설렌다."
이건 단순한 감사 인사가 아니다.
삶이 바뀌기 시작한 신호다.
예전의 나는
모든 걸 통제하려 했다.
예민했고,
계획이 조금만 틀어져도 불쾌해졌고,
유연함이 없었다.
아침에 발을 삐끗하면
"재수 없다, 왜 아침부터 이러지?"
불길함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생각부터 다르다.
"휴, 다행이다. 이 정도면 괜찮지."
"오늘, 왠지 잘 풀릴 것 같아."
그 사소한 생각의 선택 하나가
삶 전체의 분위기를 바꾼다는 걸
몸으로 배우고 있다.
나는 내 감정을 관찰하고,
그 주인이 누구인지를 떠올린다.
나다.
그러니, 다스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어.'
'이건 별거 아니야.'
이 말들은 나를 속이기 위한 주문이 아니다.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말이다.
아이들과의 하루도 달라졌다.
내가 쓰는 말,
내 표정 하나하나가
내 안의 '생각'에서 흘러나온다는 걸 알기에
말을 고르고, 생각을 정제하게 된다.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내 생각을 붙드는 또 하나의 주문이다.
생각이 바뀌면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달라진다.
그러면
행동과 반응도 자연스럽게 달라진다.
예전엔
삶이 흘러가고,
나는 그 안에 떠 있는 기분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하루를 직접 설계하는 감각으로 살아간다.
시간을 아끼고 싶고,
몸을 아끼고 싶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아끼고 싶다.
그 마음이 생기니까
해야 할 일이 보이고,
하지 않아도 되는 일도 명확해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몸을 움직이고,
생각을 붙잡고,
하루를 정리하고,
감사하는 하루.
이 모든 변화는
내가 '생각'을 다르게 선택하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불필요한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었고,
그건 이제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삶은 더 이상
무작정 쏟아지는 비처럼 나에게 쏟아지지 않는다.
이제는
내가 짓는 집처럼,
내가 설계하는 구조처럼
천천히 다가온다.
예전의 나는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나만의 기준으로 하루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 변화는
매일 아침,
'모페'를 펴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
나는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갈피를 찾아가는 중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하다.
생각이 바뀌면,
삶도 진짜로 바뀐다.
매주 금요일,「다시, 나로 쓰는 글들」을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