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담은 제주가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 사람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자연에 가까워서 곶자왈 같고, 바닷가 같고, 사람 같다. 제주에서는 돌을 올려 담을 쌓는 작업을 ‘다운다.’고 하고 돌 만지는 직업을 ‘돌챙이’라고 부른다. 조환진은 돌담 쌓는 사람이다. 쌓고, 고치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알린다. 돌 귀한 줄 아는 사람을 만나서 돌 쌓는 이야기를 들었다.
- 돌담은 꼭 자연풍경 같다. 바닷가에 인류가 거주하면서 돌로 물길을 막아 고기를 잡았을 것이고, 땅을 경작하면서 골라낸 돌이 쌓여 담이 되었을 것이고, 목축을 하면서 한라산 중턱에 잣성이 생겼을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돌담이 처음 생겨나던 때의 풍경은 어땠을까?
간단하다. 돌담은 지금도 생겨나고 있다. 제주 곳곳에 새로 개발되는 택지지구에 가 보라. 제주 사람들은 잠시 생겨난 황무지를 두고 보지 못한다. 어느새 마을 할망이 나타나 땅을 고르고 밭을 만든다. 그렇게 밀려난 돌이 쌓이면 담이 된다. 돌담의 탄생을 거창하게 따져 물을 것 없다. 지금 저 모습은 처음 담이 생겨나던 때의 반복이다. 역사서 속에서 따져본다면 제주 축성 기록에 ‘석공을 몇 명’ 동원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때의 석공은 이미 전문가 개념이었을 것이다.
-세상 대부분의 것들은 개중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잘 생긴 돌, 못 생긴 돌, 늙은 돌, 어린 돌, 귀한 돌이 따로 있나?
제주는 젊은 지형이다. 거의 한반도의 막내뻘쯤 될 것이다. 서쪽의 비양도 같은 섬은 역사서에 탄생 날짜가 기록되어 있을 정도니까. 전체적으로는 그렇지만 제주 돌 중에서 늙은 돌을 이야기하면 노출된 시간에 따라 다르다. 빛과 바람에 오래 드러난 돌은 풍화되면서 겉이 늙는다. 망치로 두드리면 바스러진다. 표면이 부서져 나가면 아직 젊은 돌의 안쪽이 다시 드러난다. 올레라고 부르는 돌담의 표면은 검다. 지질학자가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제주 현무암은 철과 마그네슘 함량이 높은데, 공기 중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철성분이 산화되어 날아가고, 상대적으로 마그네슘 비율이 높아지면서 검은색을 띤다고 한다. 바닷가의 현무암이 더 검은 것도 염분이 철의 산화를 재촉하기 때문이다.
잘 생긴 돌과 못 생긴 돌은 생김새에 대한 취향 문제다. 암반을 깨서 만든 돌을 깬돌이라고 부르고 곶자왈에서 나온 울퉁불퉁한 돌을 곶돌 또는 꽃돌이라고 부른다. 모양이 반듯한 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울퉁불퉁한 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보통은 억지로 깨어 만든 돌보다 자연석을 선호한다. 돌은 생김새가 자유로우니까 개중에 잘생긴 면이 있다. 이 잘난 면이 담을 쌓을 때는 기준면이 된다. 담의 양편에서 모두 보기 좋기는 어렵고 한 면을 선택해야 한다. 집과 길의 경계, 집과 집의 경계에 돌을 쌓으면 어느 한쪽을 정해서 반듯하게 쌓는다. 반대편은 상대적으로 울퉁불퉁하다.
- 돌담을 보는 기준은 각각이겠지만 그 완성은 구조적 완결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바람 많은 제주에서 잘 쌓은 돌담이란 시각적 기교에 앞서 구조적 완성도를 만족시켜야 한다. 외담이라고 부르는 제주 돌담은 되는대로 돌을 올려둔 것 같지만 좀처럼 무너지지 않는다. 얼기설기 쌓인 틈으로 담 너머의 풍경은 보일 듯 가리고, 바람은 그 사이를 들고 나서 어지간한 바람에도 무너지지 않는다. 흉내라도 내어보려고 돌 몇 개를 차곡차곡 올려보지만 여지없이 무너진다. 돌담은 어떻게 쌓나?
쌓아야 할 땅에 돌이 준비되면 우선 기준선을 잡는다. 말뚝을 박아 줄을 띄우면 담이 일어설 자리가 잡힌다. 그다음에는 바닥돌을 놓기 위해 터를 판다. 흙은 비가 오면 쓸려나가고 서리가 내리면 들뜬다. 서리가 내려갈 수 없는 깊이까지, 비에 씻겨 내려가지 않을 깊이까지 땅을 파고 기초를 놓아야 한다. 이 기초를 딛고 담이 올라설 테니까, 기초를 놓는 작업이 가장 중요하고 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돌담은 돌 사이의 마찰력으로 수직의 위태로움을 버틴다. 돌을 쌓는 요령이란 이 마찰력을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배울 수 있다.
조환진은 당장에라도 알려줄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의 눈은 마당 한편에 놓인 돌무더기를 향해 있었다. 당장 배울 수 있다고 말하지만, 그가 보낸 시간이 공으로 흐른 것은 아닐 것이다. 쌓는 본새를 보면 대충의 공력을 알 수 있다. 고수의 돌 쌓기는 적당한 돌을 눈대중하다가 집어 들고 대충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턱, 올려놓는다. 그러면 돌은 마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 자리에 들어가기 위해 세상에 온 것처럼 딱 들어맞는다. 사각 블록 테트리스 따위는 명함도 못 내민다. 배움과 익힘은 닮았지만 결이 다르다. 돌을 만지고 쌓은 시간이 길수록 돌을 읽는 눈이 좋아지고, 적당한 돌을 고르고 방향을 맞추는 일이 쉬워진다. 이 과정은 마치 돌의 무게를 덜어내는 것 같아서, 석공의 실력이 좋아질수록 돌을 다루는 몸이 가벼워 보이고 돌은 속이 성근 것처럼 경쾌해진다.
- 그렇게 쌓으면 하루에 몇 개쯤 쌓나?
무엇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다르다. 한 겹으로 쌓는 외담이라면 하루 30미터 정도 나가지만 돌집을 짓는다면 하루 1제곱미터를 올리는 것이 고작이다. 돌을 깨어 쓰느냐 자연석을 쓰느냐에 따라 다르고 겹담을 쌓느냐 외담을 쌓느냐에 따라 다르다. 계절도 영향을 미친다.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옷은 엉겨 붙고 돌은 미끄러지고 몸은 빨리 지친다. 그래서 같은 작업일 때 여름 견적이 더 비싸다.
- 제주를 여행하는 사람에게 잘 쌓은 돌담을 보여주려면 어디로 데려가면 되나?
잘 쌓은 돌담이라는 기준은 맞추기 어렵다. 새로 쌓은 돌담들은 매끈하고 반듯하다. 좀 더 제주다운, 원형에 가까운 돌담이라면 애월읍 금성리를 추천한다. 제주라고 모든 섬에 돌이 많은 것은 아니다. 금성리는 개중에 돌이 많은 지역이고 자연스럽게 발달한 돌담의 원형이 많이 남아있다.
그가 알려준 금성리의 잔머슬동산이라는 이름은 지도에 없다. 내비게이션에 표시되는 길은 자동차가 지나갈 수 있는 포장도로 기준이다. 예전부터 생겨난 돌담과 올레는 기껏해야 우마차가 다니던 폭이라 길안내 지도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나마 방법이라면 내비게이션의 빈틈을 찾아가거나 대충 근처까지 찾아간 후 이리저리 작은 길을 뒤적여보는 것이다. 길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쏟아내는 거기쯤에 돌담길이 있다.
- 여러 문화권에서 돌을 쌓는다는 행위는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 가장 흔한 것에 공을 쏟아 쌓아 올리면 특별해진다. 돌탑도 그중에 하나 아닌가. 매일 돌을 쌓는 사람도 날마다 바라는 것을 담는가?
하하, 내 작업의 대부분은 의뢰받아 쌓는 돌이다. 거기에 어떤 개인적 기원은 없다. 다만 쌓을 때마다 생각한다. 이 돌담이 천년을 갔으면 좋겠다.
그가 쌓은 돌담은 제주 도처에 있다. 성이시돌 센터 기도원 입구의 작은 돌담도 그의 작업이다. 부끄러운 듯 살려낸 곡선이 그의 마음에도 썩 만족스럽다. 금성리 밭담은 잣담이라고도 부르는데, 해마다 조금씩 무너지면 그와 그의 학생들이 슬쩍 와서 고쳐놓고 간다. 아무런 대가도 없지만, 예쁜 돌담이 허물어지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해서 온다. 반치옥사진관의 외담도 그가 쌓은, 천 년이 갈 돌담 중에 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