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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비 Sep 26. 2022

풍경을 대하는 사진관의 자세



#1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에 문득 생각했다.

풍경사진가가 되었어도 좋았겠다.

요 며칠 제주 하늘이 참 예쁘다. 태풍이 다녀가면서 뭉게구름이 잔뜩 따라왔다가 제주와 주변 하늘에 터를 잡은 것 같다. 새벽의 구름은 기대를 품게 만든다. 한낮의 구름은 체고가 높고 투명하다. 저녁의 구름은 다른 세상을 잠시 이곳에 끌어온 것처럼 신비롭다. 그 구름과 초록의 맑은 산, 코발트빛 바다가 섞여 만드는 제주의 여름 풍경은 일 년 중 딱 이때만 볼 수 있다. 습도가 높고 남풍이 적당한 때의 제주. 이때는 눈 닿는 곳마다 구름이 아름다워서 괜히 마음이 바쁘다. 어디를 가든 이제껏 보지 못한 감동이 있을 것 같아서 집에 있으면 안 될 것 같다. 나는 인물과 건물을 찍는 사진사니까 풍경사진에는 별로 재능도 없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가끔 의뢰를 받으면 찍어내기는 하지만 독보적인 시선이나 탁월한 기술로 찍어내는 것은 아니고 그저 상업사진을 오래 한 사람이라면 대충 가지게 되는 사진 기술로 찍어내는 정도다. 

그런 나지만, 요즘의 제주를 보면 마음이 들떠서 저 아름다운 순간을 갖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찰나의 순간만 지속되는 저 장면을 포착해서 기록하고 싶은 욕심, 그 풍경을 대하며 내가 받은 감동을 여러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욕심이다. 그러나 풍경사진가들이 하나의 풍경을 만나고 채집하기 위해 쏟는 시간과 노력은 내가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풍경사진가가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은 아주 잠깐 하고 만다. 


#2

제주에 산다고 하면 일단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은 부럽다고 먼저 말한다. 


찍을 거 많겠네, 아무 곳이나 카메라만 들면 그림이겠다, 거긴 사방이 다 사진관이겠다. 


대부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래서 어려운 역설도 있다. 누가 찍어도 예쁘니까. 사진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 대한 기대가 있는데, 이 섬은 누가, 어디서, 어떤 풍경을 찍어도 다 예쁘다. 이 기대의 간격을 넘는 일이 쉽지 않다. 나는 풍경사진가도 아닌데.

내게 가장 멋진 풍경은 손에 카메라가 없을 때 보는 풍경이다.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어떻게 다르게 보여줄까 고민 없이 온전히 마주하는 풍경이 제일 좋다. 그중에 으뜸은 제주의 부속섬으로 새벽 낚시를 가서 바라보는 제주 본섬의 일출이다. 이른 새벽 작은 바위섬에 내릴 때 전등을 끄면 아무것도 안 보이다가, 거뭇한 속에 옅은 흑백의 윤곽부터 시작한 풍경은 동쪽부터 색을 입히면서 온다. 마침내 장엄하게 펼쳐지는 한라산의 선들. 백록담에서 이어지는 능선이 양쪽으로 느리게 흘러서 거대한 섬의 형상이 온전히 드러난다. 윤곽만 보이는 연극무대 위에서 관객들의 기대치가 최고조에 달한 순간, 그 흥분과 기대를 아득히 넘는 에너지를 풍기며 마침내 조명이 주인공을 비추는 순간이다.

물론 풍경을 낚는다는 낭만 같은 것은 없다. 제주에서 해창이라고 부르는 일출과 일몰 무렵의 한때는 고기 입질이 가장 활발할 때니까, 일출과 일몰 풍경은 전투의 클라이맥스를 알리는 나팔소리 같은 것이라 풍경을 감상하던 시선은 이내 수면에 떠서 흘러가는 찌를 따라간다.


#3

가장 설레는 제주 풍경 중에 하나는 섬의 북쪽에서 멀리 보이는 희끗한 윤곽들이다. 그 정체는 멀리 남해안의 섬들이다. 관탈도 정도는 쉽게 보이지만 더 멀리 있는, 한반도와 가까운 섬들은 잘 안 보인다. 그러다 가끔, 아주 맑은 날보다는 대기는 맑은데 하늘에는 구름이 약간 덮여서 불필요한 산란광이 없는 날에 신기루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그런 날은 자꾸 곁눈질을 하며 와, 와 저것 봐. 감탄하고 아내는 매번 운전에 집중하라며 그런 나를 말린다. 그 멀고 흐린 땅의 윤곽들이 가슴을 뛰게 만든다. 지금처럼 제주와 육지의 왕래가 수월하지 않았던 시절, 섬의 언덕에서 저 멀리 땅의 윤곽을 보았을 청춘들의 마음을 생각했다. 목장에서 말을 다루다가 언듯 돌아본 자였을 수 있다. 막 물질을 끝내고 검은 바위 위로 무거운 테왁을 끌어올리던 자였을 수도 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섬을 떠나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저 먼 곳에서 희뿌옇게 존재하는, 말로만 듣는 미지의 세상은 얼마나 가슴 뛰게 만들었을까.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동경과 내가 나고 자란 땅이 나를 묶어둔 것 같은 답답함. 그 대답이 저기 수평선 가운데 있다는 증거가 아니었을까. 

낮의 풍경이 멀리 보이는 육지의 윤곽이라면 여름밤 제주 풍경의 백미는 수평선을 가득 채우는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이다. 빛을 좇는 어류를 잡는 배들은 대부분 밤에 불을 밝히고 조업한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은 갈치잡이 배와 한치잡이 배다. 먼바다에 뜬 것은 갈치잡이일 확률이 높고, 가까운 바다를 채운 것은 대부분 한치잡이다. 갈치잡이 배는 거의 사계절을 다 떠있는 듯하고, 한치잡이 배는 여름에 주로 뜬다. 그래서 가깝고 먼바다가 모두 빛으로 채워지는 여름밤의 바다가 유난스럽다. 밤바다 가운데서 가스불을 밝히면 그 빛을 따라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그 작은 물고기들을 먹기 위해 한치 떼가 모인다. 그 빛은 너무 밝아서 방심하고 있다가는 한낮 햇빛에 그을린 것처럼 피부는 약한 화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배 위의 한치 낚시꾼들은 여름밤에도 긴팔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다. 이 무렵에 언덕에 올라가면 제주 어디서든 바다를 가득 채우는 어선의 불빛을 볼 수 있다. 그 밝기는 하늘의 별빛을 압도해서 밤하늘이 배경 같고 어선의 불빛이 또 다른 우주 같다. 갓 태어난 새로운 우주가 발 앞까지 온 것 같아서 신비롭다.

압도하는 풍경을 만나면 말로 형용해 내기가 쉽지 않다. 나이 들수록 쓸 수 있는 단어가 줄어든다던, 겨우 한 줌의 단어로 쓴다던 김훈의 말을 돌아오는 내내 생각했다. 그때는 작가의 말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간다는 아쉬움보다 이 한 줌의 단어를 마침내 완벽하게 구현한다는 확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들어보니 계속 쓰지 않는 단어들은 빠른 속도로 희미해져 간다. 아, 그 말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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