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사우디 수도관은 가끔 흙 때문에 막히거든요

그럴 때는 파이프를 발로 콱

사우디 수돗물에는 흙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고 무슬림들이 어리버리한 외국인에게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도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두 가지를 합친 에피소드네요.


사우디 리야드 2층 단독 주택에 이사하고 얼마 안 갔을 때입니다. 수돗물이 비실비실하더니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주택 임차 회사에 연락했습니다.


"여기 주택 459호인데 물이 안 나오네요."

"그 근처가 다 단수입니다."

"언제쯤 고쳐질까요?

"내일부터 나올 겁니다."


다음날이 됐지만 물은 여전히 안 나왔습니다.


"여기 주택 459호인데 여전히 물이 안 나옵니다."

"지금 가겠습니다."


자, 이틀 동안 거짓말이 3번 나왔는데요. 눈치채셨나요? 단수라는 건 거짓말입니다. 내일 물이 나올 거라는 것도 거짓말이고요. 지금 간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다.


3일째 되는 날 전화 상담을 포기하고 이메일로 공격적인 표현을 동원해 내용증명 비슷한 것(?)을 보내니 메카닉이 즉시 달려왔습니다.


"물이 왜 아직도 안 나오나요?"

"옥상 물 펌프가 고장 났네요."

"새 걸로 교체해 주세요. 단수 문제는 해결됐나요?"

"단수 없었는데요? 펌프 문제입니다."




이때부터 임대 업체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향후 증빙을 위해 무조건 전화와 이메일을 동시에 보냈습니다. 상당히 까칠하게 굴었던 것 같네요.


그리고 얼마 뒤의 일입니다. 물이 또 안 나왔어요. 할튼 물이 안 나온다는 게 예고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안 나오는 거다 보니 언제 갑자기 물이 끊길까 평소에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여기 주택 459호인데 물이 안 나와"

"그 근방이 다 단수야" (거짓말)

"옆집 보니까 잘 나오는데? (나도 거짓말)

"지금 바로 갈게" (거짓말)

"2시간 전에도 바로 온다며" (나도 거짓말)

"진짜 사람이 없어. 1시간 뒤에 갈게"

"응"


이러면 1시간 뒤는 아니지만 일단 그날 오긴 옵니다. 저녁 8시 막 어둑어둑해질 때 옛날 구형 프라이드 같이 작은 차에 5명씩 타고 와요.


메카닉이 옥상에 올라간 동안 혼자 정원에서 서성이다가 담장 끝 구석에 설치된 '왠지 밸브 같이 생긴 것'을 90도 돌려봤어요. 밸브를 돌리는 순간 바로 옆에 있는 정원 스크링클러에서 물이 나오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며칠 전에 정원 스프링클러를 점검했던 메카닉이 밸브를 잠가놓고 그냥 간 거였어요. 밸브를 잠그는 순간 물 공급은 끊겼는데 물탱크에 저장된 물로 3일 동안 쓰는 바람에 밸브가 잠긴 걸 몰랐던 거죠.


"조금 전부터 물이 나와"

"응 내가 옥상에 있는 펌프를 고쳤어"

"여기 밸브를 돌리니까 나오던데?"

"응 그건 물을 잠그고 여는 밸브야"

"방금 펌프를 고쳤다는 건 뭐야? 새 거인데?"

"응 펌프는 문제없어."




물은 수시로 끊겼고 그때마다 항상 원인은 새로운 거였어요. 펌프가 고장 났거나, 밸브가 잠겼거나, 물이 새고 있어서 자동 차단됐거나, 상수도가 터져서 진짜 단수가 된 적도 있었네요. 물론 저는 그때도 단수라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옆집에 20톤짜리 물차가 와서 물탱크 리필하는 걸 볼 때까지는요.

단수가 지속되면 물차를 사서 물을 채웁니다

가장 흔한 단수 원인은 상수도를 통해 온 물이 저희 집 파이프를 타고 올라와서 물탱크에 들어가기 직전에 흙 때문에 막히는 거였어요.


흙이 조금씩 쌓여서 펌프가 빨아들이는 힘보다 세게 물을 막으면 물탱크에 물이 들어오지 않게 되죠. 그러면 우리는 그걸 모른 채로 살다가 약 3~4일 뒤에 물탱크의 물이 바닥났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물이 새는 곳을 찾겠다며 땅 속 파이프를 헤집어놨네요

이 건으로도 메카닉을 여러 번 불렀는데 그때마다 해결책이라는 게 대단히 불투명했어요. 저는 집 안에서 애들 달래고 있고 메카닉들이 옥상에 가서 뭔가를 하고 내려오면 물이 나왔거든요.


사우디를 떠나기 불과 몇 개월을 남겨두고 그 해결책(?)을 저도 스스로 습득했는데요, 비법은 다름아니라 물탱크에 연결된 쇠파이프를 발로 씨게 조지는 거였습니다. 이건 영상으로 보는 게 이해가 빠릅니다. 아 물론 이게 뭐라고 굳이 이해까지 해야 하는 사건은 아닙니다만...

그러고보니 단수 이벤트 중에 두 번 정도는 고양이가 범인이었던 적도 있습니다. 물 펌프 스위치 옆에 사는 야생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얘들이 장난치고 벽 타고 기어오르다가 밸브를 내려버렸어요.

고양이가 올라가 있는 판때기 아래에 밸브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일을 겪다보니 나중에는 저만의 단수 솔루션 루틴이 생겼습니다. 물이 안 나온다 -> 1층 정원 밸브 점검 -> 1층 고양이집 스위치 점검 -> 옥상 물 펌프 리셋 -> 물탱크 쇠파이프 후리기. 여기까지 해보고 안 되면 그건 정말로 지역 단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