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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눈탱이를 치지 않는다고는 안 했습니다

"무슬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건 제가 무슬림 카 메카닉에게 직접 들은 말입니다. 당연히 그 말이 거짓말이었죠. 오늘은 거짓말 이야기인데 주제가 주제인 만큼 사진은 보여드릴 게 마땅히 없네요.


특정 직종을 비하하려는 건 아닙니다만 자동차 정비처럼 전문가와 비전문가가 자주 만나는 업종은 정보 비대칭에 의한 눈탱이 현상이 자주 발생하죠. 사우디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우디에서 새로 구입한 신차는 1년 만에 배터리가 나갔습니다. 몇 번 점프 스타트를 했는데도 계속 나가서 카센터에 갔더니 배터리 사망 판정을 내리더군요. 1년 된 신차라고 했더니 그러면 교체할 때가 됐다네요.


메카닉 말로는 날이 너무 더워서 배터리 수명도 1년 정도라는데 정말 믿거나 말거나입니다만 어쨌든 운행을 해보니 배터리가 사망한 건 맞더라고요.


그래서 글로벌 체인 카센터로 갔습니다. 아무래도 현지 브랜드는 믿음이 덜 가서요. 주인장이 저를 사무실로 부르더니 가장 잘 팔리는 배터리를 소개해줬습니다. 독일제인데 1850 리얄이래요. 이게 얼만지 아시나요? 70만 원입니다.


저는 뉴욕에서도 2년 동안 중고차를 몰았습니다. 타이어 바람 넣기, 배터리 갈기, 타이어 지렁이 패치, 유리 금 때우기 같은 간단한 정비는 스스로 할 줄 알거든요. 사우디에서 배터리를 교체하러 카센터를 찾은 건 마트에서 도무지 차 배터리를 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못 찾은 걸 수도 있지만요.


미국에서는 월마트에서 59달러짜리 배터리를 사다가 혼자 교체했는데 아무리 물가 차이가 있다고 70만 원이라니요? 제가 얼탱이가 없어서 가만히 보다가 너무 비싸니 다른 걸 보자고 하니 예의 그 말이 나왔습니다.


"나는 무슬림인데, 무슬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기, 거짓말이라고 안 했는데요. 그냥 더 싼 모델을 보여달라고 했을 뿐입니다만? 혹시 제 발 저린 도둑이세요? 그다음으로 보여준 배터리는 일제 1200 리얄(45만 원)이었고요, 더 저렴한 걸 보여달라 하니 800 리얄 (30만 원)을 부릅니다.


이쯤 되면 그 가게를 나왔어야 하는데 가기 전에 들은 말이 있었어요. 인도 지인이 말하길 외국인을 보면 가격을 부풀리니 그런 줄 알고 흥정을 하라고 했거든요. (사우디 카센터에는 인도 파키스탄 사람이 많이 일합니다)


뉴욕 브루클린에서 중고차 판매상과 일기토를 벌여 4시간 동안 차값 500만 원을 깎은 승전 경험이 독이 됐는지 튀어나와야 할 시기를 놓치고 계속 흥정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중고차 일기토 스토리가 궁금하신 분은 브런치북 뉴욕 일기 1권으로...)


카센터 주인장이 꺼낸 마지막 카드는 한국산 배터리였습니다. 그 사람 표현을 빌리면 "일제만큼 좋은 한국산"인데 550 리얄이랍니다. 그러면서 그 이름도 익숙한 로켓트 배터리를 꺼내주더라고요. 더 싼 건 없답니다.


일단 국산 배터리인 만큼 성능에서 뭘 속여먹을 것 같지는 않았고, 1850 리얄에서 550 리얄로 내려온 데다, 50 리얄은 우수리 떼 달라고 하면 될 것 같아서 오케이 하고 말았습니다. 자동차 배터리 가는데 20만 원을 낸 셈이네요.


배터리 교체 작업을 하는 내내 주인장은 이 배터리가 참 좋은 물건이며 가격도 저렴하게 잘 산 거라고 저를 추켜세웠습니다만 그 소리가 오히려 저를 불안하게 했고, 나중에 제 흥정기(?)를 들은 인도 지인은 웃으며 자기가 갔으면 그 반값이었다고 다음에는 꼭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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