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설계사는 그걸 몰랐을 뿐이고
사우디에서 살 때 지냈던 집은 거실이 전면창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집을 설계한 사람은 지구과학 시간에 졸았든가, 아니면 태양의 복사열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저희 집에는 벽걸이 에어컨이 총 9개(!) 달려 있었는데 거실 에어컨은 항상 풀가동이었고 그래서 자주 고장 났습니다. 혹사당해서...
할튼 그건 중요한 게 아니고, 아니 엄청 중요한 거긴 한데 오늘 주제는 아니네요. 아주 중요하죠. 중동에 집을 지으면서 전면창이라니... 참고로 다른 집은 창문이 극단적으로 작고 보통 이중창입니다. 복사열과 모래로부터 실내를 지키려는 지혜죠.
할튼 저희 집 거실 전면창은 총 3토막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가로세로 2.3미터쯤 되는 왼쪽 한 토막, 비슷한 크기로 오른쪽 한 토막, 그리고 가운데에 폭이 1미터 정도 되는 창문이 있었죠. 아래 사진에서 2번 창문이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슬라이드로 열리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창문을 열려면 방충망이 필요하잖아요. 해가 아무리 쨍쨍 쬐도 벌레는 항상 있거든요. 개미, 모기, 바.. 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볼드모트와 같은 그 존재, 쥐며느리... 할튼 다양하게 살았습니다.
위에 사진에서 보면 왼쪽 1번 통창 왼쪽에 창문과 비슷한 크기로 새시가 있죠? 그게 방충망이거든요. 창문을 오른쪽으로 밀어서 열고, 거기 있는 방충망을 끌어다 창문 위치에 놓으면 되는 구조예요.
문제는...
방충망이 창문보다 작다는 겁니다. 사진은 방충망을 떼서 창문의 오른쪽에 붙이고,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닫은 거예요. 그런데 오른쪽 새시는 정위치인데 왼쪽은 방충망이 구멍보다 작습니다. 폭이 한 뼘이나 작아요.
처음에 사우디에 갔을 때는 모래바람이 하도 불어서 창문을 완전히 닫고 살았거든요. 그러다 모래바람이 어느 정도 가셔서 창문을 열려고 봤더니 방충망이 작은 겁니다. 얼마나 황당했을지 상상이 가시나요?
집 렌털 회사에 연락해서 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설명했더니 메카닉이 와서 방충망을 떼갔어요. 그리고 약 2주 뒤에 떼갔던 방충망 새시를 그대로 들고 돌아왔습니다.
새시가 수입한 거라 사이즈에 맞게 만들 수가 없대요.
... 네?
알루미늄 각재를 사이즈에 맞게 잘라서 용접하고 방충망을 붙이면 되는 간단한 작업인데... 예???
아무리 어필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겁니다. 사우디에 살려면 일정 부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해요. 결국 그들이 내놓은 솔루션은 모자란 부분만큼 창문으로 덮고(?) 창문과 방충망 사이를 테이프로 붙이는 거였습니다.
저 창문과 통창 새시 사이로 어른 손바닥도 들어갈만한 광활한 틈이 생겼지만 그 부분에 대한 대답은 '노'였습니다. 뭐가 '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그들의 취지는 '그런 틈으로는 벌레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거였겠지요. 어쩌면 '난 모르겠다~' 였을지도요.
물론 모기는 자유롭게 왕래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모래바람이 하도 불어서 창문을 열 일이 별로 없었다는 점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