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에버기븐이 좌초됐는데 내 이삿짐은 왜 안 주나요?

수에즈 사고 나비효과

*브런치북 <사우디아라비안나이트> 설정을 빠뜨려 재업로드합니다. 라이킷 주신 분께 양해 말씀드립니다.


2021년  3월 23일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던 파나마 선적 초대형 화물선 에버기븐호가 좌초됐습니다. 훗날 조사에서 선장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인재로 밝혀졌는데, 어쨌든 화물선이 운하를 통째로 가로막으면서 양방향 통행이 차단됐습니다. 

에버기븐호 잊지 않겠다

이 사고로 운하가 6일 동안 멈췄고 사고 선박을 끌어낸 뒤에도 정상화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는데요. 대한민국 국민 중에 이 사고의 여파로 손해를 본 사람이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만 그 피해자가 여기 있네요.


미국 뉴욕에서 1월 마지막주에 출발한 저희 이삿짐은 통상 45일, 늦어도 60일 뒤인 3월 말에는 사우디 리야드에 도착해야 했는데요, 3월 23일에 하필 저 운하를 통과하다가 길막에 당해버리고 만 것이지요.

쌍방향 길막

운하 북쪽 출입구인 포트사이드에 진입하기 전에 사고가 났으면 차라리 다른 배들처럼 희망봉 쪽으로 돌아서 오기라도 했을 텐데 한가운데 대염호까지 들어온 뒤에 통과 직전에 사고를 마주쳐버려 오도 가도 못하게 발이 묶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4월이 넘어서야 운하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길막 대기 중인 선박이 357대였다고 하네요. 


이때까지만 해도 이삿짐이 저기에 갇혔다는 걸 까맣게 모르고 있던 저희는 4월 1일까지 짐이 세관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못 받아서 '거짓말처럼 이따 막 이삿짐 차 들어오고 ㅋㅋ' 이런 농담이나 하고 놀았습니다. 

이삿짐 쌓을 곳이 넓어서 안심이다

그리고 뉴스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다가 '혹시' 하는 생각에 얼른 전화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컨테이너선이 멈춰 섰다는 소식을 들었네요.


그래서 운하가 재개된 4월 초에는 짐을 받았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짐은 5월 말이나 돼서야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4월 초에는 사우디에서 라마단이 시작됐거든요. 


사우디 사람들은 평소에도 그렇게 열심히 일하지 않지만 라마단 기간 동안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저녁에는 놀아야 하고 낮에는 밥을 한 술도 뜰 수 없는데 당연히 일 할 기운이 없겠죠.

큰 장 들어옵니다~

그럼 라마단이 끝나고 짐이 들어왔냐면 그것도 아니고요. (언제 들어오는 거야!) 나중에 설명드릴 기회가 있겠습니다만, 라마단이 끝나면 수고했다는 의미로 2주 정도 국가 휴일이 선포됩니다. '이드'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임시 공휴일 같은 겁니다. 다만 기간이 2주인 거죠. 이드 휴가까지 끝나고 나서야 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버기븐호 선장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사고는 라마단 및 이드 휴가 기간과 겹쳐서 3월에 받아야 할 이삿짐을 5월 말이 돼서야 받게 만들었네요. 한 달 반에서 두 달 잡는 미국-사우디 루트인데 무려 꽉 찬 4개월. 나비효과도 이런 나비효과가 없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