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관은 꼼꼼히 읽읍시다
AMC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 증시에서 공매도 기관 vs 개인 힘겨루기 사건으로 800% 폭등 이런 기사로 많이 알려졌습니다만, 평범한 영화 체인입니다. 미국 전역에 영화관이 있고요, 우리나라 CGV 같은 겁니다.
미국은 영화 티켓값이 시간대별로 차이가 큽니다. 우리나라는 조조면 조금 싸고, 로얄석이면 조금 비싼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죠. 무슨 요리 먹으면서 누워서 보는 그런 거 말고요. 미국은 같은 영화인데 쌀 때는 8달러, 비쌀 때는 21달러 이렇게 크게 변해요.
그래서 비싼 티켓을 주로 사야 하는 경우라면 월간 회원권 제도를 이용하면 좋습니다. 멤버십에 가입하고 한 달 동안 아무 AMC나 가서 자유롭게 12편을 볼 수 있는 거예요. 미국 전역에서 통용되는 거, 주요 주 몇 곳 뺀 거, 그리고 몇몇 곳에서만 쓸 수 있는 거 이렇게 3개 버전으로 나뉩니다.
그런데 전미 버전이라고 해도 큰 부담은 아니에요. 한 달에 비싼 영화 2편 이상 본다면 따로 사는 것보다 월간권이 확실하게 이득입니다. 그래서 저도 끊었죠. 그리고 있잖아요? 뭐든 가입을 할 때는 규정을 잘 읽어봐야 합니다.
제가 끊은 건 뉴욕이 포함된 몇 개 주 전용이었는데 한 달에 23달러였습니다. 3만 원 정도 되는 셈인데 그 돈만 내면 1주일에 3편, 한 달에 최고 12편을 공짜로 볼 수 있는 겁니다. 한 달 동안 평균 18달러 정도 하는 거 두 편만 보면 이득인 겁니다.
게다가 그때는 마블 영화 전성기였거든요. 어벤스 엔드게임이 개봉했고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나올 때였죠.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라면 자막 없이도 볼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얼씨구나 하고 월간권을 끊었죠. 그리고 열심히 봤습니다. 한 달 동안요.
그리고 비극의 시작인데, 한 달 동안 뽕을 뽑고 해지하려고 보니까 월간권을 일단 끊으면 3개월은 무조건 결제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23달러가 아니고 3개월에 69달러인 거죠. 돈을 내는 것만 3번에 나눠서 낼뿐.
이게 왜 중요하냐면 저는 뉴욕에 있는 동안 영화관에를 갈 수가 없잖아요. 낮에는 1호기랑 2호기를 돌봐야 하고 밤에는 얘들이 자고 있으니까요. 그러다가 한 달 정도 한국에서 부모님이 와계신 적이 있거든요. 뉴욕 관광도 시켜드릴 겸 얼마나 좋습니까? 숙박 교통 모두 공짜니까요.
그래서 야간에 아이들 잘 때 부모님께 맡기고 저는 영화를 보고 오는 거죠. 부모님은 딱 한 달 머무셨는데 그때 AMC 월간권을 끊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부모님께서 귀국하시면서 월간권 결제를 해지하려고 하니까 그게 안 되는 거예요.
앱이나 홈페이지에 아무리 찾아봐도 해지 메뉴가 아예 활성화가 안 돼 있어요. 그래서 안 되는 영어로 고객센터에 연락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니까 이게 3개월은 무조건 결제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어떡합니까. 부모님 귀국하시면 영화관 못 가는데.
결국 첫 달 빼고 뒤에 두 달 동안은 단 한 번도 못 가고 날렸죠. 정말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이득이었어요. 첫 한 달 동안 9번 정도 갔거든요.
볼 영화가 그렇게 많았냐면 그건 아니고 본 영화 또 보러 가는 거죠. 엔드게임만 3번 보고 스파이더맨 파프롬홈은 한 5번 본 것 같아요. 나중에는 영화관에 혼자만 있어서 영화 보다가 좋아하는 장면은 휴대폰으로 찍어서 다시 보고 그랬어요.
한 가지 아쉬운 건 좋아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 기획 상영을 했는데 날짜가 애매해서 그걸 놓친 게 너무 아깝더라고요. 무료 관람 3회나 남았는데.
그렇게 심야 영화를 보면 새벽 2시쯤 됩니다. 주로 마블 영화라 유난히 늦게 끝났어요. 그럼 영화관이 있던 31가에서 집까지 아래로 11블록, 옆으로 2블록을 걸어와요.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네요.
새벽 2시에 아시안이 혼자 뉴욕 밤거리를? 이상하다 전에도 이런 문장을 썼던 것 같은데, 데자뷔?
처음에는 별로 의식을 못 했는데 몇 번 다니면서 보니까 좀 무섭긴 하더라고요. 홈리스도 많고요. 그리고 차라리 진짜로 혼자서 가면 괜찮을 텐데 영화가 끝나고 흑인들 몇 명이 같이 나올 때가 있거든요.
왜 콕 찝어서 흑인이냐, 인종차별이냐, 아닙니다. 심야 영화 보고 나올 때 백인이나 아시안을 마주쳐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그분들이랑 우연히 방향이라도 같으면 꽤 무섭거든요. 그래서 맨하탄 경찰서가 있는 블록이랑 밝은 종합병원이 있는 블록 앞으로만 다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