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용 식탁

by 조모비

19:43 여름밤. 하늘이 주황빛으로 넓게 물들었다. 주방 끝에 난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노을이 동네교회의 붉은 십자가와 잘 어울리던 날. 나미가 저녁상을 치우며 이번 주말도 아이들을 잘 먹여서 다행이라고 마음 놓는 순간. 집 전화기가 울렸다. 여느 때와 같이 모비가 종종종 달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모비는 순간에 알아차렸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모비가 나미의 눈치를 본다. 나미도 직감적으로 수화기 너머 누가 있는지 알 것 같다. 행주질을 멈추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제야 모비가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한다. "아빠..."


나미는 화장대에 앉아 괜스레 휴지로 화장품 사이사이 먼지를 훔쳐낸다.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친정 식구들이 그랬다. 아이들에게 아빠까지 빼앗을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래도 나미는 억울했다. 진성이 비겁하게 잠수 타버린 사이 내가 얼마나 전전긍긍하며 우리 새끼들을 지켰는지. 그래도 아이들에게 아빠까지 뺏을 수는 없는 거라고... 타오르는 가슴을 애써 잠재워본다.


며칠 후 모비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진성과 밥만 먹고 와도 되냐고. 이번 주말에 아빠가 무등산에 같이 가자는 데 가도 되냐고. 주눅 들어 나미의 눈치를 보는 아이들이 밉고도 안쓰러웠다. 너희는 모르지. 너네 아빠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못됐는지. 그리고 그 시간 내가 얼마나 무섭고 억울했는지. 나미는 아이들이 몰라줘서 서운하고, 알까 봐 두려웠다. 웃으며 잘 다녀오라고 할 자신은 없어서 그래라. 하고 얼른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모비는 나미를 두고 진성과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엄마는 혼자 밥을 잘 챙겨 먹는지 신경이 쓰였다. 나미와 집에서 따뜻한 된장찌개를 먹을 때 진성은 어디서 살며, 누구와 밥을 먹는지 걱정했다. 어디서 무엇을 먹든 항상 세 명이었다. 언제나 4인용 식탁이 다 채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자리 비운 누군가가 신경이 쓰이는 모비는 부러 꼭꼭 씹었다.


진성은 산을 좋아했다. 무등산 입구에서 항상 번데기나 미니 소라고둥을 사고 무등산 지도가 그려진 알록달록한 손수건을 구경했다. 증심사에서부터 모비 동생이 힘들다면서 칭얼댔지만 진성은 어떻게든 꼬셔서 토끼등을 지나 중머리재까지 데려갔다. 눈이 오는 날에는 아빠 발자국만 밟으라며 앞선 뒤 서석대까지 오르기도 했다. 정상에서 좋지? 좋지? 연신 물으며 사진을 찍어줬다.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을 때마다 모비의 눈동자는 빨갛게 나왔지만 진성은 열심이었다. 산을 내려올 때에는 발가락에 힘을 주어야 해서 더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면 올라올 때 보던 수많은 백숙 집 중 김치가 제일 맛있는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계곡 소리를 들으며 모비는 나미도 산을 좋아하나 생각해 본다. 그런데 엄마는 차가 없지. 같이 오긴 힘들겠다고 생각한다.


모비가 진성을 만나는 주기는 대중이 없었다. 2주 만에 보기도 하고, 몇 달 만에 보기도 했다. 모비는 진성의 숨겨진 시간을 알지 못했다. 나미의 고생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진성은 추측할만한 요소가 없었다. 아빠는 어디서 살아? 누구랑 살아? 무슨 일 해? 돈은 있어? 어떤 물음에도 진성은 시원하게 대답해 주지 않았다. 그저 옛날 차보다 훨씬 허름한 자주색 승용차를 타고 우리를 데리러 와서 몇 시간 함께하고 다시 집 앞에 내려주었다.

나갈 때마다 나미가 신경 쓰였고, 들어올 때마다 진성이 걱정됐지만 모비는 공범이 있어서 좋았다. 동생은 항상 모비와 함께 했다. 이 우주에서 모비와 동생만이 같은 처지였다. 모비의 슬픔을 온전히 아는 것은 동생뿐이었다. 어린이들의 3살 차이는 실로 크고도 위대한 간격이어서 슬픔을 말로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모비와 동생은 존재 자체로 서로를 위로했다. 채워지지 않는 4인용 식탁에서 모비와 동생은 늘 함께였으니까.

이전 06화나미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