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서; 사랑의 편지
돌아보니 네가 거기서 계속 울고 있더라.
네 대신 사과를 받아주고 싶어서 큰 용기를 내서 말했는데 돌아오는 말이 없었어.
그래서 나는 네 몫까지 미워해 주기로 했지. 미워한다고 해봤자 먼저 내밀던 손을 거둔 것뿐이야. 그랬더니 거기서도 먼저 연락이 없었어.
그런데 '미움의 칼'이라는 게 손잡이가 없더라. 상대를 깊이 찌르려면 나도 칼날을 세게 쥐어야 하더라고. 내 손바닥에 아직 굳은살이 없어서 너무 괴로웠어. 이제 그만 칼을 내려놓고 싶은데 이미 박힌 칼날을 빼는 게 더 아플 거 같아서 찌르지도 못하고 내려놓지도 못하고 나는 서 있어.
사실 칼 끝이 상대에게 닿았는지도 모르겠어. 이번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동생을 아프게 하는 걸 보면 조금도 찔리지 않았나 봐.
너도 알지? 내가 지키고 싶었던 한 사람. 이 우주에서 나랑 같은 처지인 단 한 사람. 동생만큼은 지키고 싶었던 것. 그런데 그 사이 내 마음이 너무 얇아져서 지금은 대신 싸워주지 못해. 이 얇은 종이마저 찢어지면 죽을 것 같거든.
나는 혼자 버티는 동생이 안쓰러워. 동생이라도 철 없이 나쁜 말도 하고, 무시도 하고, 모질게 하면 좋겠는데, 짝사랑하기로 했대. 용서하는 대신 덜 사랑하면 된대. 그러더니 예전의 나처럼, 혼자 눈치 보면서 양쪽을 배려하는 거야. 그냥 자기만 생각하지. 우리 집에서 제일 어리니까 마음대로 뗑깡 놔 버리지. 어린이가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어른들은 마음이 아프댔는데, 내가 그래. 동생은 항상 나보다 어리니까.
그런데 사실 나도 못했던 거라 어쩔 수는 없어. 내가 다시 건강해져서 동생을 지키는 날이 오는 수밖에.
그래서 나.
이제 내가 널 위로하려고 해. 다른 사람 대신 내가 사과해 주려고.
고생했어, 어린이 모비야. 많이 힘들었지?
네가 나쁜 게 아니야. 부모에게 미움을 물려받았을 뿐이야. 그래서 사람이 미운 거야. 그러면서도 원래 어린이는 부모를 미워하기 어려워. 우리 집 어린이들도 나보다 날 더 많이, 자주 용서해 줘.
그러니 이제 그만 7살에서 나와. 머리가 예쁘게 잘 자랐어.
6학년에서 나와. 너 말고도 네 이름에 투표한 친구들이 꽤 있었대.
정사각형의 어두운 방, 옆에서 잠든 동생 몰래 이불로 입을 막고 울던 중학생 모비야. 이제 그만 울어도 돼. 엄마 아빠한테 대드는 대신 이리저리 눈치 보느라 힘은 들었어도 그 덕에 공부도 열심히 했고, 취업도 하고 가정도 빨리 이뤘잖아. 손해만 본 것은 아니야. 네 덕분에 엄마, 아빠가 마음을 고쳐먹는 순간이 정말 있었을지도 모르지. 네 덕분에 동생이 며칠 정도는 더 해맑았을 거야. 그리고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어.
고마워. 고생했어.
이제 내 기억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줘. 혼자 앉아 울지 말고, 마음껏 노래 불러줘. 생각날 때마다 네게 모두를 대신해 사과할게. 대견하다고 할게. 잘했어. 최선을 다했지.
내가 널 달래니까 이제 그 누구도 미워할 필요가 없어졌어. 칼날을 빼낸 내 손바닥이 다 나으면 아마 너도 더 편안해질 거야. 또 편지할게. 잘 있어.
2025. 9. 1.
38살의 모비가 어린 모비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