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명절 증후군

by 조모비

명절을 싫어하는 어린이 두 명이 있었다. 명절은 왜 두 번이나 있을까. 또 왜 이렇게 길까. 명절이 오기 한참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명절이 지나면 마음을 앓았던 어린이들.


진성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까지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가세가 기운 조 씨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 되었다. 남편을 잃었는 데에도 시아버지 제사를 챙겨주는 형수가 고마워 제사 때마다 돈봉투를 잊지 않았고, 조카들에게 모비와 동생에게는 사준 적 없는 과자종합세트를 사가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진성은 때마다 선산에 가서 아버지와 형의 산소 앞에 조화를 새것으로 바꾸고,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에서 술을 올렸다. 진성은 이 모든 일들을 딸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내 핏줄이니까. 진성이 죽으면 자기도 아버지와 형 옆에 묻힐 테니까 모비에게 미리 알려줄 게 많았다. 그리고 둘째 고모, 막내 고모와 고모부, 사촌 언니 오빠 동생을 만나는 자리에도 모비와 동생을 부지런히 데려갔다.


그러나 모비에게는 나미에게 물려받은 미움이 있었다. 우리를 내쫓은 둘째 고모, 우리 엄마한테 욕까지 한 사촌 오빠, 3층집이 압류당하기 전에 에어컨을 자기네가 챙겨가야 했는데 아쉽다던 막내 고모, 허우대 멀쩡해서 골프 하면 딱 좋은 체격인데 노가다를 하고 있다며 혀를 찼던 막내 고모부. '언니, 그래도 언니 아빠한테 잘해. 삼촌 불쌍해.'라고 했던 사촌동생. 모비는 모두가 미웠다.


나미는 할머니가 돌아가셔도 절대 그 큰집엔 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해왔다. 그러나 진성도 물러서지 않았다. 큰집에 따라나서지 않겠다고 하거나 성묘를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하면, '알았다, 너네끼리 잘 살아라.'라며 연을 끊자는 문자가 왔다. 모비는 두려웠다. 나미의 말대로라면 진성은 정말 나쁜 사람인데, 모비에게는 한 없이 다정한 아빠이기도 했다. 파란색 접이식 자전거를 사 와 큰 운동장에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고, 예쁜 옷이나 신발이 있으면 동생 것까지 색깔만 다르게 사다 주었다. 광주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길 때면 하굣길 픽업을 해주었고, (항상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긴 했지만) 근사한 외식을 시켜줬다.





명절이 되면 모비는 나미에게 거짓말을 했다. 큰집에는 절대 안 간다고 약속하고 나와서 진성을 따라 큰집에 간 것이다. 성묘에도 갔다. 나미가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던 고모들과 할머니와 사촌들을 만났다. 나미에게 너무 미안했지만 진성과 또 연락이 안 닿는 시간이 상상만으로도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대신 모비는 최선을 다해 예의 바르고 싹싹하게 행동했다. 숫기가 없어 말을 잘 안 했던 동생 대신 더 많이 웃고 더 크게 대답했다. '너네 엄마'는 잘 지내냐는 질문에도 "네, 그럼요."라고 천연덕스럽게 기죽지 않고 대답했다. 나미가 우리들을 이렇게 잘 키웠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나미를 욕 먹이지 않기 위해서 모비와 동생은 시키지 않아도 제사와 차례 음식을 날랐고, 다 먹은 그릇은 개수대에 가져다 놓았다. 허리를 반듯이 세우고 아무리 꼭꼭 씹어도 체했지만 절대로 티 내지 않았다. '선생님 돼서 뭐 할래, 고모부처럼 법대에 가야지.'라는 말을 듣고도 "아, 네. 그러게요."하고 웃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고모부의 딸과 아들이 어느 대학을 가는지 보려고. 그들은 모비보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했다. 모비는 속으로만 웃었다.



"너네 아빠는 아들도 없어서 나중에 모실 사람도 없고 불쌍해서 어쩌니."라는 고모부 말에 "저희가 잘 모시면 돼요."라고 대답했다. '그게 쉬운 일인 줄 아니?'부터 시작한 일장연설은 무척 괴로웠다. 그 고된 시간 끝에 집으로 돌아오면 나미가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다. 너무 웃으며 들어가면, '가끔 와서 맛있는 거 사주는 게 그렇게 좋니? 맨날 고생해서 먹이고 재우고 키우는 건 엄만데.' 할 것 같았고 너무 울상이면 '왜 무슨 일이야? 혹시 큰집 갔어?' 들킬 것 같았다. 죄책감이 묻은 명절. 그런 명절은 10년 이상 반복됐다.



안타깝게도 모비와 동생이

나미와 진성, 모두를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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