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2월 평소 농구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던 오바마 대통령이 대학교 농구 경기를 관전하였다. 농구 경기의 결과보다 더욱 화제가 되었던 것은 그의 스타일이었다. Rag & Bone bomber 재킷을 입은 그의 모습은 얼핏 대통령이 아닌 할리우드 배우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피지컬 라인과 패션센스를 선보였다. 또한 신발은 그가 평소 애용하는 올버즈로 아주 자연스러운 깔맞춤(?)을 완성했다.
그리고 이 브랜드를 너무 애정하는 나머지 신는 것으로는 부족해 직접 투자도 하고 광고모델을 하는 한 유명배우가 있다.
광고 속 중년 남성이 나를 향해 묻는 듯하다.
그리고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처절한 울림이 퍼진다.
‘저는 자유주의자입니다.’
월요일 출근이 고된 직장인이자 주말에는 아이들과 치열한 일과를 보내며 자유를 갈구하는 아주 평범한 자유주의자이다. 뜬금없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질문에 진로상담에 응하듯 나의 간절함이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하는 걸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말하는 물질주의는 단순히 물질만능주의가 아닌 물건 구매로 인해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고려하냐는 것이다. 즉, 물건의 소재가 환경 그리고 더 나아가 지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상당히 심오한 질문이지만 직역의 한계인지 내가 너무 세속적인 사람이라 그런지 지갑을 여는 큰 울림은 없었다. 다만 이전부터 도요타의 친환경차 프리우스를 몰고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고대하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소감으로 기후변화를 언급한 그였기에 그의 고민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그런 디카프리오가 직접 투자한 신발 브랜드가 궁금해졌다.
올버즈는 뉴질랜드에서 활동하던 축구선수 팀 브라운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그가 보기에 매년 200억 켤레의 신발이 생산되는데 대부분의 브랜드가 로고를 앞세우고 컬러 조합만 약간씩 바뀌는 것이 혁신이 필요해 보였다. 소재 또한 합성물질로 만들어 생산을 거듭할수록 생산단가는 떨어지지만 기후변화에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였다. 만약에 자연소재로 신발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가 사는 지구의 미래가 조금은 희망적이지 않을까 생각하였고 친환경 사업가인 조이 즈윌링거를 만나 서로의 관심사가 같음을 확인하고 의기투합해 공동 창업을 결심하였다.
하지만 사업 아이디어와 실질적인 생산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양모를 소재로 한 신발을 만들기로 하였는데 정작 제조가 가능한 공장이 없었다. 그러던 차 우연히 한국 부산에 소재한 한 공장을 소개받았고 이탈리아 밀라노 업체도 두 손 든 첫 양모 신발을 4개월 만에 완성하였다.
올버즈는 양털, 나무, 사탕수수, 페트병 등 기발한 소재로 신발을 만든다. 보통 가죽 몸체에 고무 밑창으로 만드는 일반적인 구성과 달리, 올버즈의 울러너(Wool Runner)는 뉴질랜드산 메리노울로 몸체를 만든다. 실제로 야생의 양은 얼룩진 털을 갖고 있지만, 메리노 같은 개량된 품종은 솜털만 갖고 있다. 양털은 곱슬이어서 신축성이 매우 강해서 잡아당기거나 곧게 편 털도 순식간에 원상복구되어 아웃도어, 패션의류에 주로 사용된다. 또한 감촉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며 습기도 잘 받아들이고, 비나 습기를 맞게 되면 스스로 열을 발산해서 냉습감을 잘 다스린다. 반면, 물에는 강하나 무겁고 부피가 크며, 오염됐을 때 세탁에 제약이 따르고, 뛰어난 성능에 비해 사용이 까다로운 단점이 있다.
올버즈의 혁신은 양털에서 끝나지 않는다. 밑창은 사탕수수를 가공하여 만들었고 신발 끈은 재활용된 플라스틱에서 섬유를 뽑아 제작하였다. 거기다가 재활용지를 포장지로 활용해 배송으로 인한 환경 부담을 줄였다. 올버즈는 단순히 친환경 소재로 신발을 제작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착용감 편의성, 특히 세탁기로 빨아도 줄지 않는 울 스니커즈의 강점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그 결과, 성공적인 투자금을 유치할 수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2018년 새로운 소재의 신제품을 시장에 선보였다.
양모 제품이 여름용으로는 부적합하다는 소비자들의 의견이 있었는데 유칼립투스 나무 펄프를 섬유로 만들어 제작한 트리 러너는 울 러너에 비해 더 가볍고 통기성이 뛰어나다고 평가받는다. 양모에 이어 나무로 신발은 만든 올버즈의 혁신과 친환경 고집은 올버즈의 정체성을 더욱더 선명하게 자리매김하였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국가 간 협의체(IPCC)의 권고를 받아 120여 개국이 2050년까지 달성하겠다고 선언한 탄소중립이 대표적이다. 탄소중립은 배출하는 탄소량과 흡수하는 탄소량을 같게 한다(넷 제로)는 의미다. 중국과 일본에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달 28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라고 선언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현재 배출하는 양만큼 탄소를 줄이거나 흡수해야 한다. 탄소 절감 능력에 따라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 판단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패션은 원료 생산부터 가공에 이르기까지 지구 상의 어떤 사업보다 물을 많이 사용하고 그만큼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업종으로 꼽힌다. 오염을 줄이고 복구까지 하려면 아무리 장사가 잘 되어도 공급량을 늘리기 어렵고 원가절감은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올버즈는 전혀 걱정이 없다. 이미 탄소 중립 100% 달성을 선언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 ‘탄소세’도 부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버즈는 기후변화는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며 소비자와 공급자가 모두 ‘이해관계자’라는 점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를 위해 탄소를 얼마나 배출하는지 측정하고 탄소 배출량을 kg 단위로 공개한다. 탄소 배출이 불가피하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지고 대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올버즈의 철학과 메시지는 패션업계를 넘어 인류에게 큰 울림을 주고 있다.
블랙프라이데이는 미국 최대 연말 행사 중 하나로 1년 중 가장 대대적인 할인을 하는 날이다.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세계적인 생활상이 변화되었고 사재기가 만연하는 풍토에서 올해 블랙 프라이데이는 기업들로 하여금 매출을 올리고 재고를 떨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는 개개인의 순간적인 구매욕을 채워줄 수는 있지만 되려 환경에는 되돌릴 수 없는 악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트럭 방수천을 재활용하여 가방, 지갑, 힙색을 만드는 대표적인 업사이클링 기업 프라이탁의 경우, 설립 이래 27년 동안 블랙프라이데이에 참여해본 적이 없다. 올버즈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블랙프라이데이에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파격적인 방법을 택했다.
블랙프라이데이 하루 동안 모든 제품 가격을 1달러씩 인상하고 추가된 1달러의 수익금은 기후 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설립 한 청소년들이 주도하는 국제 환경 운동인 프라이데이 포 퓨처(Fridays For Future)에 기부하였다. 정말 모두가 오른손을 들 때 왼손을 드는 용기 있고 기발한 발상이다. 이러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올버즈가 원체 도매를 하지 않기에 가능했다. 오프라인 매장은 뉴질랜드와 미국, 영국, 중국, 일본에 약 20개 정도 직영으로 운영하지만 이커머스를 통한 소비자에게 직접 파는 D2C를 기본 사업모델로 한다. 도매에 의존하면 더 많은 물량을 내보낼 수 있지만 가격에 대한 통제권을 잃고 결국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에 손실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올버즈는 국내 시장도 총판을 두지 않고 직접 진출하였다. 이 브랜드의 국내 시장 진출이 국내업체들을 포함한 패션업에 많은 고민을 가져다줄 수 있기를 바란다. 매년 시즌별로 디자인만 조금 다른 신제품을 생산하여 판매하기만 급급한 매출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물질주의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해당 콘텐츠는 Jimmy Cho님과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