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관들 앞에서 주섬주섬 핸드폰을 꺼내며 ‘제가 궁금한 것들을 적어왔는데 잠깐 봐도 될까요?’하면 대부분이 당황했다. 그들은 마치 자신들도 질문에 답변해야 한다는 걸 생전 처음 알았다는 것처럼 당황해했다.
노골적으로 불편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이없다는 듯이 ‘허!’하고 웃고서 ‘궁금한 게 아주 많으신가 봐요’하는 게 너무 빈정거리는 티가 나서, 나도 당황한 적 있다.(질문해봤자 3~4개였는데…)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도 들어오려고 사람들이 줄을 섰다는 듯한 그 태도가 자신감 넘쳐 보이기도 했고, 솔직히 바보 같아 보였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네모 반듯한 책상에 인상 쓴 중년 면접관 몇 명이 앉아 있고, 한 명쯤은 인자한 사람이 미소 지어 주고 있는 그런 면접장에서는 회사만 지원자를 평가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소리치는 구닥다리식 면접 자리가 절로 떠오른다. 마치 복종을 맹세하는 것 같다.
지원자도 회사를 본다. 그걸 모르나? 그럴 리 없다. 개발자들은 모셔가지 않나. 지원자가 차고 넘치는 대부분의 직군에서는 경매장에 나온 매물 평가하듯이 평가한다. 그런 관계는 근로 계약이라 부르지 않는다. 노예 계약이다. “자, 내가 너를 왜 뽑아야 하는지 말해봐”, “저는 밥도 잘하고 몸도 건강합니다요. 저를 뽑아주세요. 열심히 하겠습니다.”
나는 면접을 보러 갈 때 항상 질문거리들을 적어간다. 회사를 골라갈 수 있는 최고의 인재들만 그럴 ‘자격’이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디폴트 값이 잘못됐다고 느낀다. 세상은 원래 정글이라 할지라도, 인간 사는 사회는 정글에서 짐승처럼 살지 않기 위해 무리를 이루고 문명을 만들었다. 근데 시장의 수요/공급 논리로 모든 걸 설명하려는 시도는 자신이 인간답게 살 필요가 없다고 얘기하는 것과 같다.
해당 포지션에 대한 질문이다. 만약 면접관이 먼저 설명을 똑바로 했다면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지만, 대부분 뭉뚱그려서 모호하게 얘기하기 때문에 되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마케터가 마케팅하죠 뭐’하는 식의 면접관들이 많다.(솔직히 이런 회사가 제대로 된 사람을 뽑는지 의문이다) 마케팅 안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영역인지, 회사가 집중하려고 하는 바가 무엇인지, 내가 정확하게 어떤 커리어를 걷게 될지 하나도 모르게 말이다.
면접관 수준이 낮으면 일단 의심하고 봐야 한다. 그 사람이 뽑은 사람들이 좋은 사람들 일지 아닐지 모르기 때문이다.
회사의 속사정을 저도 모르게 말하게 하는 질문이다. 보통 회사의 문제는 숨기려 하는데 ‘고민’을 물어보면 잘 대답해준다. 이러한 질문에서는 여러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1) 무엇을 문제라고 정의하는지
2)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3)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4)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특히 1, 2번이 중요한데, 면접관이 회사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정말 그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여겨선 안 된다. 오히려 그 회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에서는 ‘꼰대 문화’ 같은 걸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수평적으로 소통하고 싶어 하는 조직들에서나 그런 걸 ‘문제’라고 정의한다. 다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는 별개다.
누구와 함께 일하게 되는지도 중요하다. 다만 위 질문들은 물꼬를 트는 첫 질문일 뿐 추가 질문을 잘 던져야 한다. 보통 뻔한 소리만 해주기 때문이다. 추가로 덧붙일 수 있는 꼬리 질문들은 이런 게 있다.
Q. 서로 친한 편인가요?
→ 형/동생 한다고 좋은 게 아니다. 다만 기본적인 정도의 유대와 친밀한 관계가 없다면 서로 원만하게 협업하지 않고 뭔가 갈등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Q. 업무는 주로 어떻게 분배되나요?
→ 주도적이고 능동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인지를 알 수 있다. 나는 시키는 일만 하는 게 싫으니까 이런 걸 물어본다.
Q. 회의 시간에 가장 말을 많이 하는 건 누구인가요?
→ 팀장만 말하는 회사는 개인적으로 별로 안 좋아한다. 내가 내 생각과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같이 일하게 될 동료들이 가만히 듣기만 하는 사람들인지, 아니면 생각이 있고 그걸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서 이 질문을 한다.
Q. 마이크로 매니징에도 장단점이 있는데, 본인은 어떤 편이신가요?
→ 실제로 장단점이 있어서 어떤 스타일인지 궁금하여 물어본다. 난 마이크로 매니징을 안 좋아하는 편이라서 이 질문을 한다.
실제로 회사의 방향성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방향성을 구성원들이 제대로 알고 있는지도 궁금해서 물어본다. 회사의 방향성은 내 포지션이 어떻게 변할지, 어떤 과업이 생길 수도 있는지, 회사가 성장하면 내가 또 경험해볼 수 있는 업무가 있을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리고 그 방향성이 회사에 잘 공유되고 있는지 봐야 하는 이유는 경영진의 기본적인 마인드셋을 볼 수 있어서다. 자기 생각이나 경영진들끼리 속닥속닥한 의사결정 사안들을 비밀에 부치고 사원들을 병정으로 보는 경영진은 기본적으로 정보 공유 자체를 잘 안 한다. 공지만 한다. 원대한 비전을 정리해서 분기별로 공지하는 식이다.
회사에서는 결국 상품을 잘 만들어 팔아야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그렇다. 내가 무슨 포지션을 맡았든 내가 기여한 회사가 어떤 가치를 만들어내는지는 항상 중요하다. 속한 조직이 무슨 가치를 만들어내는지도 모르면서 돈 벌려고 다니는 건 동기부여가 떨어지니까 싫다.
이 질문으로는 면접관들의 대답을 바탕으로 그 회사 사람들의 소속감이나 동기부여 수준도 알 수 있고, 회사가 고객 중심으로 일하는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
각자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다. 자율성이 중요한 사람도 있지만 안정성이 더 중요한 사람도 있다. 돈보다 성장이 중요한 사람이 있는 반면, 급여 수준을 1순위로 봐야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회사가 좋은 회사인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면 당연히 지원자도 그 회사가 자신한테 잘 맞는 회사인지 알아봐야 한다.
채용 담당자가 된 나는, 지원자들이 회사에 대해 궁금한 점을 꼭 물어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이 있으면 다음번 회사 소개 설명에 미리 집어넣는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먼저 설명해주기 위해서다. 질문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면접을 1시간 보면 그중 20분 이상은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받는 시간으로 쓴다. 이걸 단순히 지원자를 위해 시간을 ‘소모한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분명 어떤 면접관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1시간도 빠듯한데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더 물어봐야 하는 시간에 회사 설명으로 너무 많이 소모하는 것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에 질문을 받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 그 사람이 질문하는 내용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무엇을 궁금해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성향은 어떤지가 드러난다. 동료들과 협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커리어 성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연봉이나 복지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등을 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대화 중간중간에 질문을 계속 유도한다.
회사 공고를 보고 나서 저희 회사에 대해 궁금하셨던 게 있으셨나요?
(회사 소개를 해주고 나서) 혹시 궁금하신 점 있으신가요?
(질문을 잘 못할 수도 있으니 선택지를 준다) 맡게 될 일에 대해서라든지, 팀이라든지, 조직 문화라든지 또 궁금하신 게 있으실까요?
(더 질문을 하도록 유도한다) 한 가지만 더 꼽는다면? 더 궁금하신 거 또 없으세요? 더 물어보셔도 돼요.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면접 끝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연락하라고 말씀드려도 아무도 안 하시더라구요. 지금 물어보셔야 해요. 아무 거나 다 물어보셔요!
만약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조금 주의 깊게 봐야 한다. 그냥 조건에 맞는 아무 회사나 가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추가 질문을 잘 던져서 그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 봐야 한다.
아무 회사나 가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일이 잘 되는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더 받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잘 모를 가능성이 있다. 반면 자기 삶에서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회사를 더 알아보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질문도 중요하다.
나는 회사의 평판도 믿지 않는다. 사업적으로 성공했을 지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힙하고 세련되어 보일 지라도 믿지 않는다. 사람을 볼 때도 그렇듯이 이름값과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직접 눈으로 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표들을 뜯어봐야 한다.
면접은 회사가 일방적으로 구직자를 평가하고 심사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원자도 회사의 본모습을 알기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고 질문해야 한다.
경매장에서 물건 거래하듯이 지원자를 일방적으로 평가하는 채용 담당자나 경영자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유디V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