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서울의 열대야가 20일을 넘었대요, 이 더위는 언제 끝날까요? 더위가 끝나길 바라며 많은 사람이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바로 입추인데요, 사람들은 왜 입추를 기다릴까요? 왜 입추에 매직이라는 단어가 붙었을까요? 트위터 등에서 시작된 ‘입추매직’이라는 단어는 입추가 지나면 마치 마법처럼 날씨가 시원해진다고 하여 생겨난 일종의 밈(Meme)입니다. 입추매직은 사이언스라는 일종의 공식도 존재한답니다.
저도 입추매직을 믿는 사람 중 하나예요. 입추가 지나면 공기가 선선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선조의 지혜에 감탄하고는 했는데 문득 의문이 들었어요. 정말 입추가 지나면 시원해지는 걸까? 아니면 그냥 기분 탓인 걸까? 그래서! 데이터를 통해 입추매직의 진실을 확인해보기로 했습니다. 지난 10년간 날씨 데이터를 분석해서 말이죠.
24절기 중 열세 번째, 양력 8월 8일 무렵인 입추(立秋)는 그 이름처럼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8월 초인데 가을에 접어들었다니요? 아직도 이렇게 더운데… 이건 계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이때의 계절은 태양의 고도와 주간 시간 등으로 나눈 천문학적 계절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봄(3・4・5월), 여름(6・7・8월), 가을(9・10・11), 겨울(12・1・2)과는 차이가 있고 이때의 계절은 달력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의 기온이 되어야 쾌적하다고 느낄까요? 당연히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많은 뉴스에서 20~25도 정도를 쾌적한 기온으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근거를 찾고 싶어서 검색하던 중 논문을 발견했어요. 대한지리학회지에 게재된 「우리나라의 자연계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여름이 끝나는 시점은 평균기온 20도 이하, 가을이 시작하는 시점은 최고기온이 25도 이하로 정의합니다. 뉴스 등 각종 매체에서 제시하는 쾌적한 기온과 비슷하네요. 우리도 이 기준을 가지고 가을이 왔는지 여부를 판단할 거예요.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데이터를 분석해보겠습니다. 날씨 데이터를 구하기 위해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기상자료개방포털에 접속합니다. 입추와 처서 당일의 날씨 데이터와 처서 이후 8월의 날씨 데이터를 수집하여 하나하나 파헤쳐봅시다.
데이터를 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입추 당일 평균기온이 20도 이하인 년도는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2020년의 24.3도가 근 10년간 가장 낮은 기온이었어요. 평균기온이 20도 이하이면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했죠? 이렇게 본다면 입추매직은 그저 우리의 기분 탓이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 최고기온이 남아 있습니다!
최고 기온으로 살펴보니 조금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2010년, 2011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20년의 기온이 25도 이하였습니다. 60%의 적중률을 보였어요. 이 기준으로 본다면 가을이 시작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하지만 뭔가 애매합니다.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하면 입추매직이 진짜인 것 같기도 하지만, 평균기온은 전혀 아니었으니까요. 지구 온난화로 인해 매년 기온이 높아지고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처서매직’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양력 8월 23일 무렵인 처서(處暑)는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다. 그래서, 처서의 데이터도 분석해보았습니다.
처서 당일 평균기온을 살펴보죠.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하는 20도보다 기온이 낮은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덥네요. 평균기온 데이터만 보면 처서매직도 기분 탓이었던 걸로 판정되었습니다. 예상 밖의 결과예요.
처서의 최고기온은 2016년과 2018년을 제외하고 모두 25도 이하로 나타났습니다. 이 정도면 처서매직은 근거 있는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지만 아직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여전히 평균기온과 최고기온에서 다른 결과를 보이니까요.
조금 더 정확한 답을 찾고 싶어서 처서 이후 8월의 기온도 살펴보았습니다. 처서 이후 8월의 기온은 어떨까요? 계속 최고기온 25도 이하를 유지할까요?
2010년부터 2020년까지, 8월 24일에서 31일의 일별 평균기온 데이터를 시각화한 히트맵 차트입니다. 기온이 높을수록 짙은 붉은 컬러로 나타나는데요, 전체적인 컬러가 붉은 것으로 보아 여전히 더웠음을 알 수 있어요. 기온이 가장 높았던 날은 2020년 8월 26일(30.2도)이었고요, 반면, 가장 기온이 낮은 날은 2016년 8월 31일(17.7도)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최고기온을 살펴보겠습니다. 처서 이후 데이터를 시각화한 차트인데 역시나 붉은 컬러가 많이 보이네요. 10년간 데이터에서 최고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간 날은 단 9일. 특히 2020년은 전부 붉은 컬러로 나타나 기온이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어요.
지금까지 날씨 데이터를 통해 입추와 처서의 기온을 살펴보았습니다. 다시 차근차근 정리해보자면, 입추와 처서 모두 여름이 끝나는 시점이라고 하는 평균기온 20도 이하로 내려간 년도는 없었습니다. 처서 이후에는 2016년 1일, 2017년 2일만 20도 이하의 기온을 나타냈습니다.
가을이 시작하는 시점으로 보는 25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진 날은 입추 6일, 처서 8일을 기록했습니다. 처서 이후 8월에는 2010・2012・2015・2018년 각 1일, 2016년 3일, 2017년 2일이 25도 이하를 나타냈어요. 다시 정리해보아도 시원하다고 느낀 건 기분 탓이었나 봐요.
지금까지 데이터를 통해 입추매직과 처서매직의 진실을 파헤쳐보았습니다. 느낌상으로는 정말 입추나 처서가 지나면 시원했던 것 같은데 데이터를 보니 다른 결과가 나와 조금은 당황스러웠어요. 앞으로 조금 더 데이터에 기반한 사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래서 입추매직과 처서매직은 진짜 맞는 거냐고요? 데이터를 살펴본 제 생각에는 가을이 오긴 했는데 완전히 여름이 사라지지는 않은, 여름과 가을이 공존하는 시기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올해 기록적인 폭염과 열대야로 힘든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얼른 선선한 가을이 왔으면 좋겠어요.
이 콘텐츠에서 볼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는 데이지 베이직(DAISY Basic)으로 만들었습니다. 비전문가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 툴이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번 사용해보세요. (정말 쉬워요!)
*참고
– 기상청, 기상자료개방포털
– 이병설, 1979 「우리나라의 자연계절에 관한 연구」, 14(2), 「대한지리학회지」
뉴스젤리와 모비인사이드의 파트너쉽으로 제공되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