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잘 알릴 필요 있나요? 돈도 없는데, 기술만 좋고 사업만 잘 하면 되죠.”
내가 만났던 몇몇 스타트업 대표들은 이렇게 말했다. ‘가장 시급한 문제’ 앞에 홍보 쯤은 사치라는 듯. 그래 충분히 맞는 얘기일 수 있다. 돈도 사람도 부족한 상황에서 홈페이지에 들일 예산이나 리소스가 없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분들의 말처럼 최우선 순위는 ‘생존’이 아니였던가. 우리 서비스와 제품을 세상이 모르는데, 누가 기꺼이 지갑을 열며 투자를 할까. ‘네카라쿠배당토’도 아니면서 고객과의 첫 인상에 들일 자원이 없다니!
B2B(기업 간 비즈니스) 서비스를 도입하는 과정을 ‘맞선’에 비유해본다. (감수성에서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겠지만, 그나마 생각난 게 이거다 흑흑..) 여러모로 소개팅보다는 선에 조금 더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소개팅은 저 사람과 내가 잘 맞을지에 대한 나(실무자) 혼자만의 판단만 있으면 되는데, 선은 상대적으로 가족(회사)의 일에 해당할 수 있어 ‘엄빠(경영진)’의 마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주변에 훈수 놓는 친구들(다른 부서)도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작은 제품 도입이 결혼까지는 아니겠지만.
마찬가지로 어떤 조직이 IT 서비스를 쓰겠다고 결정하는 프로세스를 상상해보자. 아무래도 영업 사원의 콜드 메일과 지인 추천 혹은 검색이나 SNS 같은 경로로 제품에 대한 정보를 먼저 접한다. 그리고 그 서비스에 대한 내용을 검토하고, 의사결정자를 설득한다. 책임자는 ‘돈 씁시다’라고 쓰인 품의서를 그냥 승인할까? 팀원에 대한 믿음이 가득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많은 결정권자들은 최소한의 ‘신뢰도 검증‘을 진행할 것이라고 본다.
일방적으로 한 쪽에서 보낸 서비스 소개서와 그 기업 직원의 말만 믿고 진행하기보다는 명분이 확실해지는 근거가 필요할 테다. 최소한 나중에 문제될 여지는 없을지 알아둬야 하니까. 그래서 우리 쪽 기안자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나름의 정보를 한 번 더 탐색할 수도 있을텐데 바로 여기서 네이버 등에서 회사를 검색하게 된다. 그러면 언론 보도와 함께 꼭 찾아보는 게 홈페이지일 확률이 높다. 즉, 여기부터가 판단의 시작점인 셈이다.
물론, 세상에는 선 볼 수많은 상대가 있으니 꼭 처음 보는 과정에 그렇게까지 공을 들일 필요는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유니콘 아니면 바퀴벌레‘일 뿐이라는 스타트업을 하겠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목숨 걸고 시간과 싸우는데, 지구에 우리를 대체할 경쟁자들이 너무나 많으며, 내가 가진 잠재력은 따사로운 햇볕을 마주하기는 커녕 내내 그림자에 가려졌다가 시들어 죽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냐고?
업계에서는 B2B 서비스가 흥행하지 못하는 이유로 크게 3가지를 꼽곤 한다. 실제 시장에서의 필요가 없어서, 가격이 비싸서, 경쟁사 대비 효용이 적어서 등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하면 바로 ‘우리 서비스를 잘 몰라서‘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니즈/가격/효용 외에도 핵심 타깃에게 기회가 왔을 때 제대로 어필하고, 편리하게 소통하게 하며, 다른 사람(미디어, 기존 고객사)의 입으로 믿음을 증명해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바로 홈페이지다.
명확한 메시지와 일관성을 넣어 잘 구성한 홈페이지 외에도 많은 잠재 고객사와 이런 접점을 만들 수 있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 있을까? 글쎄. 고객사를 한 명 한 명 찾아다니는 게 더 빠르다고 하면 말이야 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우리 서비스를 가장 잘 팔아서 돈을 버는‘ 좋은 방법을 멀리서 찾을 필요가 있나 싶다. 많은 대표님들이 말하던 ‘생존’이란 놈은 이런 목표를 가진 것이 아니던가. 요상한 광고에 돈 펑펑 쓰는 것만 답이 아니다.
게다가 스타트업은 ‘인재 전쟁’ 중이다. 훌륭한 멤버를 한 명이라도 더 합류시켜서 빠른 성장을 일궈내는 일에 팀의 성패가 달려있다. 그런데 아무리 조건이 좋은 오퍼라고 하더라도 무슨 일을 하는 회사며, 어떤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과연 끌릴까? 설령 리크루터나 헤드헌터가 개인적으로 커버해 준다고 하더라도 불안감을 씻어내기 쉽지 않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변화를 두려워 하고 안정을 원하곤 하니까.
특히 기존에 있던 조직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가는 중요한 결정을 함에 있어서,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꼭 고려해야 하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비 연봉이 15%가 오른다고 해도, 3개월도 있지 못할 곳이면 오히려 훨씬 손해일 수도 있기 때문. 이런 관점에서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모험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스타트업이라지만, 도전과 만용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랜딩 페이지만으로도 충분한 경우도 많다. 아직 MVP 레벨이라거나, B2C 비즈니스로 최종 소비자와 직접 만나는 형태의 서비스 프로덕트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은 타이밍이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앱 내의 튜토리얼이나 바이럴 만으로도 충분한 임팩트를 만들어 낼 수도 있으니까. 그럼에도 최소한의 레퍼런스가 있으며, 분명한 확장이 필요한 타이밍의 B2B 스타트업에게 홈페이지는 너무나 중요한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는 더 많은 변수가 있고, 한 가지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가득할 것이다. 그렇기에 내 의견이 정답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 홈페이지는 뒷문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세일즈 퍼널이며, 채용 마케팅의 최전방이기도 하다. 모두가 사람이 결정하는 일이기에,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 최고의 정보를 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맞선이든, 영업이든, 리크루팅이든. 바퀴벌레로 평생 살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우리는 아직 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민-당근마켓-토스가 아닌 ‘아무도 모르는 스타트업’이기에.
다음에는 어떠한 부분에 중점을 두고 우리 팀의 홈페이지를 구성하려 했는지 조심히 써보겠습니다.
류태준 님의 브런치에 게재된 글을 모비인사이드가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