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써먹는 인사이트
짧은 순간들이 만들어 낼 긴 여정을 이해합니다.
어떤 일에 능숙해지면 시야가 넓어집니다. 운전을 처음 하는 사람은 앞만 보고 갑니다. 시동이 켜진 이후의 모든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죠. 초보 운전자의 최우선 목표는 ‘사고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무사히 운행을 마치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낍니다.
이 뿌듯함이 당연함으로 바뀔 때쯤 운전자는 차에 달려있는 거울들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게 됩니다. 차 안에 있는 백미러, 차 밖에 있는 사이드미러로 뒤차와 옆차를 인지하며 운전합니다. 급정거를 하는 순간 뒤차를 위해 비상 깜빡이를 켜주는가 하면, 차선을 바꾸지 않을 때도 양옆을 살피며 갑작스러운 위험에 대비합니다. 나뿐만 아니라 남을 함께 생각하는 여유와 넓은 시야를 갖추게 되는 것이죠.
초보 마케터들은 ‘짧은 순간’만 봅니다. 모든 업무를 쪼개서 각각의 완성도를 높이는데만 몰입합니다. 광고 소재를 만들 땐 ‘상대의 시선을 끄는 법’을 연구하면서 완성도를 높입니다. 랜딩페이지를 만들 땐 ‘설득의 구조’를 공부하면서 완성도를 높입니다. 물론 아주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경험이 있는 마케터들도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고요. 하지만 이렇게 좁은 시야로는 성과(=매출)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성과를 내는 마케터들은 ‘짧은 순간’들을 ‘연결’해서 볼 줄 압니다. 나의 관점을 넘어 고객의 눈으로 내가 만들어낸 짧은 순간들을 쭉 이어서 바라봅니다. 광고 소재를 만들 땐 이 소재를 발견하기 전 고객의 심리와 클릭 후에 마주할 랜딩페이지의 메시지들을 연결합니다. 랜딩페이지를 완성한 후에는 이 페이지를 보기 전에 마주할 광고의 메시지와 이후 하게 될 행동 (추가 정보 탐색, 상품 구성에 따른 가격 확인, 결제 등)들이 매끄럽게 이어지는지 확인합니다. 실전 경험이 늘어날수록 고객의 여정을 보는 시야도 넓어집니다. 결제 이후에 고객을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 애초에 고객 집단을 나눠 각각 다른 접근법을 짜는 것도 시야가 넓어야 가능한 일들이죠.
마케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클릭이나 체류가 아닙니다. 매출이죠. 그것도 지속적인 매출입니다. 고객이 돈을 쓰는 순간은 단순히 시선을 끄는 이미지나 영상을 봤을 때가 아닙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 불편, 불안감, 지루함을 없애줄 거라는 확신을 가질 때입니다. 뛰어난 마케터들이 직접 제품 기획에 관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고객에게 말을 거는 작업(마케팅)은 물론 전하는 제안 그 자체(제품/서비스)에도 고객이 느낄 확신의 포인트가 있어야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넓은 시야 없이 ‘짧은 순간들’에 대한 지식만으로 매출을 내려고 달려들면 불필요한 일들에 집중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런 얕은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려고 들면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상세페이지는 무조건 인트로에 힘을 줘야 해’ 라며 타깃 고객의 감정은 생각지도 않고 소구포인트만 줄줄이 나열하거나, ‘광고소재는 무조건 후킹이 중요하댔어’라며 고객을 낚시질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고객의 여정 전체를 보는 넓은 시야’ + ‘그 흐름 속에 놓일 순간들의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이 동시에 필요합니다.
고객의 여정을 이해하려면 직접 고객이 되어 다양한 여정을 겪어봐야 합니다. 굳이 책상에 앉아서 연구하듯 경험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만날 고객들도 책상에 반듯하게 앉아서 돈을 쓰진 않으니까요. 제 사례를 활용해 여정을 기록하는 방법을 간단하게 살펴볼까요?
최근 저는 ‘되도록 하루 한 끼정도는 집에서 밥을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매번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다 보니 먹을 수 있는 메뉴가 한정적이고 돈도 꽤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요리한 번 안 해본 제게 제대로 된 집밥은 좀 힘들었습니다. 식사 시간만 되면 ‘오늘은 또 뭘 해 먹지?’라는 귀찮은 고민과 함께 ‘좀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더군요. 이런 와중에 우연히 네이버에서 이런 광고를 발견했습니다.
저는 이 화면을 캡처하고 바로 광고를 눌러봤습니다. 이 마케터분이 저의 여정을 고려했다면, 광고 소재에서 ‘살밥’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 저에게 먹음직스러운 살코기를 가장 먼저 보여줄 거라고 생각하면서요.
클릭 후 마주한 첫 화면에서는 실제로 풍성한 살코기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가격이 나쁘지 않고, 1~2인이 먹기 좋게 팩으로 되어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는 이 페이지를 좀 더 읽어보기로 합니다.
광고에서 심어준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고, 고객이 중요하게 여길만한 정보들을 미리 알려주기만 해도 타깃 고객은 스크롤을 내립니다. ‘시각적으로 세련되었는가’, ‘사람들을 사로잡는 연출이 있는가’는 그다음이고요. (물론 애초에 설정한 타깃이 아닌 고객까지 전환시키려면 이런 노력들도 다 필요해지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분들을 페이지 하나로 갑작스럽게 전환시키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애초에 ‘식품’ 카테고리는 확실한 소구만 잡으면 고객에게 접근하기 쉬운 카테고리 중 하나입니다. 누구나 밥은 먹으니까요. 속이 부실한 밀키트 제품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 봤던 사람들은 이 제품을 보고 한 번쯤은 궁금해할 겁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이 페이지를 만든 분은 먼저 깔끔한 제조 현장을 잠깐 보여주었습니다. 그 뒤로는 고객이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데 집중했고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알려줬습니다. 조리나 보관에서 유의해야 할 점들도 꼼꼼하게 짚어주었습니다. 이게 끝입니다. 굳이 길게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제품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이 밑에 나오는 리뷰란에서 ‘고객’들이 해주니까요.
디자인은 좀 투박하지만 고객의 여정이 잘 정리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깃 고객(집에서 밥 해 먹는 것도 쉽지 않다고 느끼는 저)에게 – 기대감을 심어주고(이런 살밥 본 적 있니?) – 그 기대감을 충족시켜 주며 (살밥을 부수는 GIF와 간편식에 대한 주요 정보 전달) –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와 신뢰감을 주었습니다. (더 맛있게 먹는 팁 + 고객 리뷰)
아직 주문하지는 않았는데, 저도 곧 한 번 먹어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고민(집에서 뭐 간편하게 먹을 맛있는 거 없나?)을 해결할 수 있는 제품군 중 하나라고 생각됐거든요.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았고요.
글로 써서 길어 보이지만 사실 이 과정을 실제로 해보면 1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지금은 네이버 디스플레이 광고에서 시작했지만 시작은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인스타그램, 포털 검색 결과, 다양한 콘텐츠 사이에 삽입된 광고 등 실제 고객의 여정을 캡처로 기록하고 그대로 따라가 보세요. 다른 마케터들의 작업 결과물들이 이어졌을 때 거슬리는 지점은 없는지, 내가 봤을 때 좀 부족한 지점은 어딘지, 구매를 강하게 자극하는 지점은 어딘지 생각해 보세요. 단순 결제에서 끝나는지, 결제 이후에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있는지까지 보면 더 좋고요.
이렇게 고객 여정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화면 캡처와 함께 저장해 두면 나중에 일을 할 때도 자연스럽게 이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단편적인 업무 각각의 완성도뿐 아니라 ‘이 고객 여정의 끝이 매출로 이어지는가’를 체크하게 되죠. 이렇게 시야가 넓어지면 일을 더 잘하기 위한 고민의 범위도 넓어집니다.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인지하고 이를 채우려는 노력들이 거듭 이어질 때, 원하는 결과를 만날 확률도 더욱 높아집니다.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