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은 고객에게 가치를 주고 돈을 받는 일입니다. 대표가 해야 할 마케팅의 첫 스텝은 ‘누구’를 위한 가치를 만들 것인가에 대해 답하는 겁니다. 고객에게 받는 돈보다 기업이 주는 가치가 더 크면 교환은 수월해집니다. 만 원짜리 가치를 만들어 오천 원에 팔면 사람들은 알아서 줄을 섭니다.
4500원짜리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에는 커피 한 잔의 가치만 담겨있지 않습니다. ‘잔잔한 음악, 빠른 와이파이, 친절한 직원, 편안한 인테리어가 갖춰진 쾌적한 공간에서 보낼 내 시간’이라는 가치도 담겨있죠. 그래서 사람들은 커피의 원가가 그렇게 높지 않음을 알고 있음에도 기꺼이 4500원을 지불합니다. 이게 당연한 일처럼 반복되면 고객은 테이크아웃을 해도 똑같은 돈을 내는 것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습니다. ‘이 브랜드는 당연히 이 가격’이라는 인식이 생기니까요.
이 가치를 만드는데 스타벅스는 공간 임대부터 마케팅, 고객 경험 설계까지 엄청난 돈과 인력을 갈아 넣었습니다. 신세계는 이 가치를 만드는 시스템 자체를 사들여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거고요.
작은 기업에게는 신세계나 스타벅스만큼의 돈과 인력이 없습니다. 당연히 폭넓은 고객들이 만족할만한 높은 수준의 가치를 만들어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대표님들이 대기업처럼 타깃 고객을 설정합니다.
20대면서 다이어트에 관심이 있는 여성이 타깃이에요.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은퇴한 60대 이상 부부가 메인 타깃인 상품입니다.
20대 여성 중에 다이어트에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을 보신 적 있나요? 저는 거의 못 봤습니다. 그만큼 이들을 노리는 큰 규모의 경쟁 기업들이 많죠. 1~10명 정도가 일하는 작은 기업이 이 많은 여성들이 기꺼이 돈을 낼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수 있을까요? 만든다면 어느 정도의 자본과 시간이 필요할까요? 수익이 날 때까지 기업을 온전히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타깃 고객을 이렇게 정하고 일을 시작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단 제품 자체가 모호해집니다. 우리는 만원의 가치가 있는 제품을 만들어 오천 원에 내놓았다고 생각했는데 고객 대다수는 이걸 만원의 가치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마케팅 메시지가 너무 애매하다고 합니다. 뛰어난 마케터를 영입해 메시지를 날카롭게 만들어 광고해봅니다. 여전히 잘 팔리지 않습니다. 메시지에 혹해 들어온 고객이 제품을 보고 ‘광고만 그럴듯하지 기대한 정도의 제품은 아니네’ or ‘다른 브랜드에 이 메시지에 딱 맞는 제품이 있는데?’라며 떠나가기 때문이죠.
결국 손해만 계속 쌓이고 기업은 점차 힘을 잃어갑니다.
타깃 고객을 선정할 때 ‘좋은 사례를 벤치마킹 하겠다’는 생각은 버립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부분의 좋은 사례는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기업들의 사례입니다. 대신 ‘딱 한 명을 먼저 찾는다’는 마인드를 가져봅니다. 처음 내가 생각했던 타깃 고객에서 세 번 이상 범위를 좁혀보세요. 그 다음 ‘우리가 적어도 이 한 사람은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구체화해보는 겁니다.
위에서 언급한 타깃 고객 중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를 대상으로 출장 세차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해보죠.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도 작은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타깃입니다. 타깃의 범위를 좁혀봅니다.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30대 → 그중에서 하남 신도시에 거주하는 사람 (지역) → 그중에서 아이가 없는 맞벌이 신혼부부 (가족구성) → 부부합산 소득이 월 1000만 원 이상인 고객 (소득)
이 정도만 줄여도 타깃을 훨씬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보다는 오피스텔의 입지와 편의성을 추구하는 고소득 부부의 삶을 떠올려 봅니다. 아이가 없으니 다양한 생활 서비스에 돈을 쓸 여유가 있을 겁니다. 차도 국내 고급 세단이나 독일 3사 외제차 정도는 각각 끌 수 있겠죠. 신도시에는 반려동물을 키우며 생활하는 신혼부부도 많습니다. 주말에 반려동물과 함께 나들이를 다녀오거나 급하게 동물병원이라도 다녀온 평일에는 다음날 기분 좋은 출근을 위해 세차가 절실하게 필요할 겁니다.
이렇게 타깃이 구체화되면 우리가 준비해야 할 서비스도 더 예리해집니다.
고급 세단, 외제차 전문 디테일 세차 + 기본 관리 서비스 옵션 (엔진오일 교환 등)
반려동물 보호자들을 위한 실내 케어 서비스 (털 + 냄새제거 + 펫시트 청소)
부부 차량 2대 신청 시 할인
평일 세차 신청 시 저녁에 키 수령 후 새벽 세차 서비스 제공
적어도 이 타깃 고객들에게 우리의 서비스는 비교 대상이 없는 서비스가 됩니다. 예리한 서비스를 갖추면 경쟁 세차 서비스들의 가격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같은 지역의 출장 세차 서비스의 가격은 1대 평균 4~5만 원이지만, 우리는 2대 기준 15만 원 수준의 가격을 제안해도 타깃 고객은 우리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한 번만 좋은 기억을 심어준다면 비슷한 상황의 이웃집 신혼부부에게 우리 서비스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도 있죠.
타깃을 좁히면 시장이 줄지 않냐는 걱정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줄어듭니다. 그런데 왜 줄어들면 안 되나요? 발휘할 수 있는 역량과 자본이 적다면 소수의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야 구체적으로 우리가 키워야 할 역량(고급차를 세차하는 기술, 반려견이 머물렀던 차를 청소하는 방법)과 집중해서 돈을 써야 할 곳(신도시 신혼부부가 모인 커뮤니티, 그 지역 주민들의 반려동물 산책로, 엘리베이터 디스플레이 광고 등)이 보입니다.
기업이 욕심을 부리면 고객은 외면으로 답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중한 돈을 애매한 곳에 쓰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이제 막 생겨난 1인 기업이라면 내가 지금 당장 만족시킬 수 있는 한 명의 고객을 찾아 시작합니다. 우리 기업이 천 명의 고객정도는 만족시킬 자본과 역량이 있다면 그 정도 규모의 타깃 고객을 정하면 됩니다. 그래야 기업과 고객이 서로 윈윈 하는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거래가 쌓여 훗날 우리 기업이 만 명, 십만 명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하면 그때 타깃을 넓히면 됩니다.
지금은 모두가 이름을 아는 거대한 기업도 첫 고객은 1명이었습니다. 몇 백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도 구독자가 1명(자기 자신)인 시기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가장 만족시킬 수 있는 타깃 고객은 누구인가요?
Tip. 다음 질문에 대표님만의 답을 채워보세요!
그 사람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될까?
그 사람의 인생 목표, 꿈은 무엇일까?
그 사람은 어떤 온라인 or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까?
그 사람은 어떤 콘텐츠를 구독할까?
그 사람은 어디에서 주로 쇼핑을 할까?
그 사람이 정보를 얻는 채널은 어디일까?
그 사람이 지금 물리적으로 불편해하는 건 뭘까?
그 사람이 지금 심리적으로 불편해하는 건 뭘까?
그 사람이 일주일에 2번 이상 마주하는 실망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 사람이 가진 편견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사람이 내가 속한 카테고리에 돈을 쓸 때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뭘까?
박상훈 (플랜브로) 님이 브런치에 게재한 글을 편집한 뒤 모비인사이드에서 한 번 더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