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세일즈연구소 유장준 대표의 칼럼을 모비인사이드에서 소개합니다.
회사를 다니거나 사업을 하면 어쨌든 ‘일’이라는 것을 한다. 워라밸 (Work-Life Balance) 원칙을 금과옥조처럼 지키며 일을 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불철주야 야근의 연속인 사람도 있다. 어떤 경우든 합당한 보상을 받으며 일을 통해 성장하는 자신을 바라보면 뿌듯하다. 또 누구나 경험을 쌓고 몇 년이 지나면 좀 더 높은 수준의 일을 하기를 원한다. 그에 상응하여 연봉도 오를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우리는 실상 일 때문에 괴로울 때가 더 많다. 일한 만큼 보상이나 칭찬을 받기는 커녕, 내가 일을 잘 하는 건지 심지어 내가 도무지 무슨 일을 하는 건지 헷갈릴 때도 많은 것 같다.
“어떤 일 하세요?” 이렇게 누가 묻는다.
“저 마케팅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이 관심을 보인다.
“아~ 주로 어떤 쪽 마케팅을 하시나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한다.
“주로 뭐 SNS 쪽 많이 하구요… 크리에이티브 쪽도 약간 관여하긴 하지만 그 쪽은 경영진 분들 의견이 중요하니까… 아무래도 광고 예산 집행 쪽을 많이 하죠.”
이 대수롭지 않은 대화에서 필자는 커다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그것은 국내 스타트업들 대부분이 취약한 부분이며 바로 ‘직무 설계’ 라고 하는 것이다. 필자가 글로벌 기업에서 스타트업 생태계로 넘어오면서 가장 큰 괴리감을 느꼈던 것이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에 대한 설계도를 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설계도는 거창한 게 아니라, 일의 목표(주로 매출액 등의 숫자)를 세우고, 그것에 대한 액션 플랜을 마련하고, 반드시 데드라인을 정하여 그것을 달성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 이런 일의 절차들은 버릇처럼 툭툭 튀어 나와야 마땅한데 말이다.
일 하는 과정도 그렇지만, 나의 업무를 나열하여 종합하는 직무 설계도 마찬가지다.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이 직무 설계를 정말 철저히 따진다. 예를 들어 보자. 어느 사무실에 전화를 받는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치자. “저 분은 무슨 일을 하는 직원입니까?” 라고 물으면 -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 대부분은 “네, 주로 회사 비용 같은 거 집행하구요, 인사팀은 아닌데 직원들 돕는 일을 주로 해요. 그리고 전화 오면 전화 주로 받습니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경천동지(驚天動地)의 망발이 아닐 수가 없다! ‘고객의 전화’ 라고 하는 것은 기업 운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최우선 순위의 업무 중 하나다. 그런데 그런 전화를 그냥 아무나 받는다고? 게다가 인사팀도 아닌데 직원들을 돕는다? 회사 비용은 또 왜 갑자기 집행하지? 어떤 일관성이나 합리성은 보이지 않고, 필자가 볼 때는 그냥 귀찮은 업무를 몰아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로벌 기업의 경우는 그 전화 받는 사람의 업무를 이렇게 규정할 것이다.
인바운드 전화 및 이메일에 대한 영업 리드 팔로우업
아웃바운드 전화 및 이메일에 대한 업무 수행 및 리포트
담당 지역의 잠재 고객 리스트업 및 데이터베이스 구축
홈페이지와 SNS를 통한 마케팅 이벤트 진행 및 리포트
온라인 웨비나 (Webinar) 개최 및 이벤트 진행 및 리포트
마케팅 매니저와의 정기적인 미팅 및 마케팅 플랜 설계 서포트
영업팀 매니저와의 정기적인 미팅 및 세일즈 전략 수립 서포트
관련 업무에 대한 정기적인 지식 공유
매출 증진을 위한 개선 방안 마련 및 기획안 작성
인터넷 검색 및 관련자 미팅을 통한 시장 조사 및 리포트
고객의 니즈와 이슈 상황 파악 및 리포트
직무를 제대로 규정해야 한다. 사람을 기준으로 업무를 던져주면 안되고, 업무를 먼저 제대로 규정한 후에 그 업무에 적합한 사람을 매칭시켜야 한다. 그 시작은 직무기술서(Job Description)를 작성하고, 역할과 책임(Role & Responsibility)을 작성하는 것으로 해야 한다. 이 부분은 특히 경영진이 많은 공을 들여야 하지만, 그냥 직원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내 업무에 대한 직무기술서를 작성해 볼 것을 강력히 추천한다. 누군가가 “어떤 일 하세요?” 라고 물으면, 쭈뼛쭈뼛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한다고 웅얼거리지 말자. 최소한 위에 나열한 리스트 같은 수준으로 20개 정도는 줄줄이 꿰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많은 업무를 오랫동안 했을 때 그 경험이 고스란히 나의 위대한 경력으로 남는다. 한 가지 더. 본인의 직무를 서류상으로 잘 정리할 줄 아는 사람은 이직할 때 연봉도 많이 오른다는 비밀도 살짝 귀띔해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