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버린 AI’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뉴스에도 나오고, 정책 관련 행사나 발표에서도 빠지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저 ‘또 하나의 한국형’ 타령인가 싶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꽤 많은 예산과 전략이 실제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왜 지금 이렇게 자주 등장하는 걸까?
‘소버린 AI(Sovereign AI)’라는 말은 결국 ‘AI에 있어서의 주권’을 말한다. 데이터, 알고리즘, 클라우드 인프라 같은 걸 남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서 관리하고 통제하겠다는 이야기다. 미국이나 중국, 유럽처럼 자국 기술을 중심으로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흐름이 한국에도 닿은 셈이다.
우리 데이터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공공·의료 데이터 같은 민감한 정보는 외산 AI에 맡기기 어렵다
문화와 언어는 우리 것이니까: 동해 표기나 사투리 인식 같은 문제에서 외산 모델은 정확하지 않다
한국형 모델로 해외 진출도 가능하다: 특히 동남아나 중동 시장에서 한국어 기반 모델의 가능성을 본다
미국과 중국의 AI 독점 구조에서 벗어나자: OpenAI나 Google, Baidu에 의존하는 걸 줄이자는 이야기다
국산 FM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데이터, 인력,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글로벌 수준 모델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모델보다 중요한 건 활용 아닌가?: 결국 AI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동남아 시장? 이미 중국이 들어가 있다: 후발주자인 한국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는 시선
국산화의 이름으로 국내 독점을 만드는 거 아닌가?: 이게 또 다른 독점 구조가 되는 건 아닐지 우려하는 사람도 많다
이 논의의 중심에는 정부의 K-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사업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관하고 있고, 202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56개 기업을 선발해, 23곳을 ‘정선 개발팀’으로 집중 지원
글로벌 LLM 대비 95% 성능 목표
중소기업도 사용할 수 있도록 GPU 자원 지원
의료, 금융, 공공 등 업종별 특화 모델 개발
데이터 가공, 인터페이스, API 등까지 전주기 지원
단순히 모델을 만드는 걸 넘어서, AI 생태계 전체를 만들어보겠다는 시도다.
해외 주요 국가들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AI 주권'을 추구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방식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뉴욕주의 Empire AI 프로젝트 ($4억 규모)
캘리포니아의 CalCompute처럼 공공 GPU 인프라를 갖춘다
연방 차원보다는 주 단위로 민간-공공 협력 모델을 다양하게 실험
EU AI Act로 윤리적 기준과 법적 책임을 먼저 정리함
독일·프랑스 등은 국가 전략에 따라 GPU 팜, 데이터셋, 오픈모델 투자 확대
블록 단위 협력으로 다국간 연구소, 규제기관 등을 운영
'AI Promotion Act' 제정: 규제보다는 혁신과 진흥 중심
윤리·자율성·산업 활성화를 동시에 고려한 균형형 전략
국부펀드 기반으로 AI 반도체 및 인간형 AI(예: Humane) 기업에 직접 투자
국가 기술 자산으로 LLM을 확보하려는 ‘경제 안보 전략’ 성격
‘소버린 AI’라는 말 자체에는 동의한다. AI가 공공 인프라나 의료 데이터 같은 영역에서 국가적 통제가 필요하다는 건 이해가 간다. 하지만 실제 논의나 예산이 흘러가는 방향을 보면, 결국 ‘국산 FM 하나 완성하는 게 목표’처럼 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그 모델이 진짜 잘 쓰이느냐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결국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잘 쓰이느냐가 진짜 성과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진짜 'AI 주권'이라는 건 모델을 만들었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데이터를 잘 관리하고,
인프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그 결과에 대해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
이런 것들이 같이 갖춰질 때 의미가 있다고 본다.
‘소버린 AI’는 단순한 국산화나 모델 만들기가 아니다. 정책적으로는 FM만이 아니라 윤리, 책임, 응용 생태계 같은 분과 논의가 병행되어야 한다. 산업계에서도 ‘우리 모델 vs 너희 모델’ 식 경쟁보다, 그걸 어디에 어떻게 쓰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중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한 시점이다. 이걸 놓치면, AI 주권이라는 말도 그저 한때의 유행어로 남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