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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Oct 10. 2022

주취자 열전

"일찍 들어왔네 아들?"


밤새 술을 퍼마시고 새벽에 귀가하면, 엄마는 늘 그렇게 말했다. 아들 하나 있는 게 걱정도 되지 않는지 밖에서 뭘 하고 다니던 염려하는 기색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일종의 무한신뢰다. 반쯤 알콜중독이자 시급 3천 원짜리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던 반백수도 거기에 감화되면 나도 아직 쓸만한 인간이란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용기를 얻어 차차 한 사람 몫을 하는 인간으로 성장해왔던 것 같다. 서른이 넘어 장가간 뒤에야 사춘기를 마무리한 나를 보며 엄마는 얼마나 속이 터졌을까.


신께서 내 취한 젊은 날의 업보를 갚으며 참회하는 삶을 살게 하시려는가. 지금껏 마주한 주취자들의 수를 세어보자면 적어도 수 백은 될 것이요, 그들과 실랑이하느라 거리에 내던진 시간을 합해도 몇 달은 될 것이다. 비응급 환자이나 의식이 불투명해 어쩔 수 없이 구급차에 싣는 그들. 병원에 데려가도 트리아제(중증도 분류 간호사)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마치 죄인이 된 양 민망한 마음으로 인계해야만 하는 그들. 여기에 그 유쾌하고도 정신 사나운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1


신입생 환영회가 한창인 3월의 대학가는 가지각색의 주취자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폭력적인 주취자, 구토하는 주취자, 고백하는 주취자, 고백하고 차여서 폭력적이 되었다가 구토하는 주취자 등등. 개인 차야 있겠지만 그중 가장 만나기 싫은 주취자의 유형은 다름 아닌 '무거운 주취자'이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비좁았다. 천장도 낮아서 내려가는 내내 거북목을 해야만 머리가 부딪히는 걸 피할 수 있었다. 진득한 체취, 곰팡이 냄새, 알코올에 절은 숨 냄새, 지지고 볶은 각색 안주거리가 뒤섞인 냄새가 훅 하고 끼쳤다. 신고자는 주점 화장실 앞에서 구급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떤 분이 쓰러지셨다고요?"


"아, 친군데요. 화장실 안에 있어요."


고개를 끄덕인 뒤 화장실 문을 열려했다. 신고자는 처음엔 화들짝 놀라서 구급대를 막아서려다 작게 한숨을 쉬고는 길을 내주었다. 어쩐지 꺼림칙한 마음이 되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볼일을 보다 쓰러진 것인지 여성은 바지를 채 올리지 못하고 변기 앞에 엎어져 있었다. 170은 족히 될 듯한 신장에 몸집도 컸다. 구급차에서  담요를 가져와 몸을 덮으며 생체징후를 확인했다. 다행히 특이점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어디에 부딪힌 것인지 이마에 아기 주먹만 한 혹이 생겨서 부득이하게 병원 이송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들것에 옮기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꼬집어도 겨우 몸을 움찔할 뿐 주취자의 의식은 혼미했다. 그러다 보니 마치 심정지가 온 사람처럼 늘어져서 들것 바깥으로 팔다리가 비집고 나와 도통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다.


압박 붕대로 손목과 발목을 고정한 뒤에야 주취자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출동한 구급대원은 셋. 그러나 계단 통로가 지독히도 좁아서 주취자의 머리 쪽에 하나, 발 아래쪽에 하나씩 들것의 손잡이를 잡고 세로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얼마 전부터 물이 차기 시작한 왼쪽 무릎이 비명을 질렀다. 오래전에 탈출한 4,5번 요추의 추간판이 더 밀려 나오기라도 하는 듯 허리 아래가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들것을 잡은 양손은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이를 갈며 숨을 몰아쉬는 맞은편 동료의 얼굴은 붉다 못해 푸른빛이 돌았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지옥의 계단을 등반하며, 머릿속에 어린 시절 즐겨 듣던 노래 가사 하나가 떠올랐다.


Oh you gonna let it all hang out

오,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을 거예요

Fat-bottomed girls you make the rocking world go round

통통한 여자여, 당신은 이 세상을 뒤흔들 거예요



#2


구급차가 한산한 시골길을 따라 달렸다. 술 취한 사람이 길에 쓰러져있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동네 주민으로 뵈는 남자 몇이 길 한쪽에 모여있었고, 아주머니 한 분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앉아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바닥이 흘러나온 피로 낭자했다. 아주머니의 얼굴에서 흘러나온 피였다. 도무지 넘어져서 생긴 상처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한쪽 눈가가 부풀어 올라 있었고, 찢어진 입술에 검붉은 피가 잔뜩 엉겨 붙어 있었다. 나는 모여있는 남자들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주머니, 넘어지셨어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맞았어요?"


하고 묻자, 아주머니가 모여있는 남자들 쪽을 노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부, 본부, 여기 OO구급. 현장 도착한 바, 폭행 사건으로 의심됨. 경찰 공동대응 요청합니다."


무전을 하니 주변을 지키던 남자 하나가 물었다.


"경찰은 왜요?"


"제가 이 분 상처를 보니까 그냥 넘어지신 것 같지는 않고, 꼭 누가 때린 것 같아서요."


"저 사람이 그래요? 우리가 때렸다고?"


"일단 여기 계신 분들 어디 가시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경찰 오면 그때 말씀하시고요."


남자는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돌아서더니 다른 이들과 무어라 쑥덕거렸다. 그러자 다른 남자 하나가 아주머니를 쳐다보며 쯧쯧 혀를 차고 담배를 하나 피워 물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억울하게 폭행을 당한 사람을 지켜내었다는 확신에 고무되어 들뜬 마음이었다. 잠시 후 경찰이 도착했고, 아주머니에게 말을 건네었다.


"아주머니, 누구한테 맞았어요?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세요."


아주머니는 눈을 빛내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정확히 내 얼굴을 향해 검지 손가락을 겨누었다.


출동한 경찰 말에 의하면 아주머니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알콜중독자라고 했다. 건축일을 하는 남편이 자주 집을 비워서 그때마다 몰래 막걸리 주조장에 술을 받으러 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녀의 남편이 집을 비울 때면 친분이 있는 동네 주민들이 하루에도 두세 번씩 부인이 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노라 남편에게 연락을 해 주기에 이르렀다.


"예, 형님, 저예요. 형수님 술 받으러 가다 넘어져가지고...... 예, 예. 구급차 왔어요......"


누군가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하는 소리에, 나는 일초라도 빨리 현장을 뜨고 싶었다.



#3


S교는 자살 명소로 유명하다. 다리 난간의 높이가 겨우 성인 허리춤 정도인 데다 수면까지의 거리도 가까워 뛰어봄 직한 인상을 주는 것 같다. 그러나 강물은 무정하다. 바닷물처럼 부력이 쉬이 작용하지도 않고, 작은 하천처럼 발아래 디딜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다. 잔잔한 수면에 몸을 던지는 순간 십중팔구 폐에 물이 들어찰 때까지 솟아오르지 못한다.


이러한 S교의 중앙엔 생명의 전화가 설치되어 있다. 욱하는 마음에, 혹은 오랜 마음의 고통을 끊어내기 위해 투신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시설이다. 전화를 걸면 24시간 대기 중인 상담자와 연결되고, 상담하는 동안 위급상황이 감지되면 119와 경찰이 동시에 출동한다.


후끈한 열기가 새벽까지 이어지던 여름밤, 생명의 전화를 통해 이제  S 교 아래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하려 한다고 말을 전한 사람이 있었다. 펌프차와 구급차, 만일을 대비해 수난구조차량까지 동원되었다. 혹시나 요구조자를 자극할까 싶어 사이렌도 끄고, 경광등도 점등하지 않은 채 움직였다. 차량들이 S 교 인근에 차례로 도착했고, 현장에는 서늘한 긴박감이 감돌았다.


요구조자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이미 다리 아래로 몸을 던진 건 아닐까 서치라이트를 밝혀 물 위를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수색이 길어지는가 싶었는데, 근처를 지나가던 젊은 여성 하나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전화하시던 분 찾으시는 건가요?"


"네, 혹시 뭐 보신 거 있으세요?"


"저기요, 저 녹색 잠바 입은 아저씨."


여자가 다리 건너 저편으로 바쁘게 걸음을 옮기는 남자를 가리켰다.


"저 아저씨가 전화했는데, 소방차 오니까 도망갔어요."


남자가 시야에서 사라지기 전에 바지를 걷어붙이고 서둘러 따라갔다. 거리를 좁혀오자 당황했는지 남자는 아예 달음박질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서 내에서 체력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였다. 이삼백 미터쯤 질주했을까, 남자는 곧 달아나기를 멈추었다. 그리고 이내 태연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저기 다리 위에 전화 쓰셨죠?"


내가 묻자,


"아, 그거요? 하하."


하고 남일 얘기하듯 뇌까리는 남자의 입에서 진한 술기운이 풍겼다.


"소방관들, 잠 안 자고 일하는지 내가 확인하려고 전화한 거죠, 하하하."


'그래도 정말 잘못된 선택을 하신 게 아니라서 다행입니다.'라고 대화를 이어가기엔 내 비위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남자의 얼굴은 일말의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저 웃는 낯이었고, 나는 그걸 바라보고 있기엔 너무 피곤했다. 잠시 뒤, 무전을 받고 뒤따라온 경찰관에게 사건의 정황을 설명해 주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경찰 앞에서도 남자는 줄곧 웃는 낯이었을까, 알 수 없다.



#4


구급차가 급히 필요하단 지령이었다.  출동하는 내내 상황실로부터 추가 접보가 없었다. 누가 어떻게 사고를 당했는지 알 길이 없어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신고자에게 전화연결을 해도 묵묵부답. 지령서가 가리키는 지점을 향해 무작정 차를 몰았다.


구시가지의 변두리였다. 구급차 좌우로 공간이 겨우 한 뼘 남짓한 좁은 골목길이 나타났다. 길은 언덕 위쪽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졌는데, 정돈되지 않은 오래된 주택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었다. 차량의 MDT(Mobile Data Terminal: 소방차 위치관리 시스템)가 목적지 인근을 가리킬 즈음, 정체불명의 남성 하나가 구급차 앞을 막아섰다. 신고자인 것을 직감하여 서둘러 차에서 내려 말을 걸었다.


"신고하셨죠? 무슨 일이신가요?"


"쉿!"


남자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나도 얼떨결에 숨을 죽이고 주변을 살폈다.


"촬영 중입니다."


"...... 뭐라고요?"


"영화요, 영화."


"영화...... 촬영하신다고요?"


행색으로만 사람을 판단할 순 없지만, 남자의 차림새는 실로 남루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청바지에 언제 갈아입었는지도 모를 색색깔 얼룩이 그득한 검정 티셔츠, 산발한 머리와 반백의 콧수염은 덤이었다. 남자에게선 야시장 구석께에서 풍기는 듯한 진한 오줌 냄새와 알코올 냄새가 났다. 그는 사뭇 진지한 얼굴로 구급차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벙찐 내 얼굴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제 됐습니다."


"네?"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다음 씬 촬영해야 하니까."


문득 영화와 연극판을 쫓아다니며 청춘을 불태우던 나의 지난날이 떠올랐다. 예술에 잡아먹혀 밑도 끝도 없이 방황하던 어린 시절의 나. 먹고사는 일보다 원하는 일을 하겠노라 떠들며 부모님의 가슴에 불을 싸질렀던 나. 이 남자의 꿈은 나처럼 현실이란 이름의 몽둥이에 두들겨 맞지 않아 깨어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너무 맞아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몽상 속 영화감독을 뒤로하며, 속으로 기도했다.


그가 꿈을 꾸고 있다면 차라리 깨어나지 않기를. 무서운 오늘에 잡아먹히지 않기를.



#5


세 친구는 사실 오래도록 교류가 없었다. 직장을 잡고 처자식이 생긴 뒤에 부쩍 만나는 횟수가 늘었다. 셋 중 하나는 응급의학과 의사, 둘은 소방관이다.


남자 셋이 모이면 으레 여자를 이야기한다 했던가(깔때기 효과), 우습게도 세 친구에겐 그와 같은 공식이 적용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요새 사람들처럼 컴퓨터 게임에 열중해서 게임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주식이나 코인 시장의 최근 동향에 대하여 염려 섞인 의견을 말하지도 않았다. 의도는 아니었으나, 그들의 대화는 늘 하나의 점으로 모였다.


누가 어떻게 죽고 다쳤는가.


세 친구에게 있어 집 안까지 끌고 들어가지 못하는 그 이야기들은 마치 날을 정하고 찾아가는 분리수거 쓰레기 같은 것이었다.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묵혀두었다가 셋이 모이는 술자리에 꼭 바리바리 싸들고 나와서 서로의 눈앞에 풀어놓았다. 터지고, 잘리고, 부서지고, 뭉개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쉼 없이 오갔다. 보통 사람이라면 옆에 오분만 붙어 있어도 헛구역질을 할 만한, 피 같은 세 친구의 이야기는 곁에 술을 박스로 두고 마셔대야 겨우 소화할 만한 것이 되었다.


잔이 가득 차면 눈가에 넘친 술이 차오르고, 술이 과해 잠이 온다는 듯 몰래 손등으로 두 눈을 찍어 누른다.


그렇게  PTSD는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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